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김연아 선수는 ‘신(神)이 내린 황금 몸매’를 가졌다. 키 164㎝, 몸무게 47㎏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의 최적격 신체다. 더구나 동양적인 미모는 뭇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긴 팔, 다리로 빙판을 날아 다니는 연기는 우아하기 이를 데 없다. 카리스마 넘치는 섹시한 눈빛, 몸놀림 또한 천하 일품이다. ‘피겨 퀸’으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그런데 김연아의 발은 아주 못 생겼다. 굳은살, 주름 투성이다.
지난 2007년 공개된 실제 사이즈 발 모형을 보면 발 길이는 220㎜다. 딱딱한 피겨 부츠를 오래 신은 탓으로 오른발 새끼 발가락은 약간 발바닥 쪽으로 말려들어가 있다. 스케이트화 속의 김연아의 발바닥 주름과 굳은살은 연습과 훈련으로 흘린 피땀의 상징이다. 이 작은 발, 발바닥에서 전 세계를 홀린 마법의 연기가 나왔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인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김연아의 발’은 ‘유나 스핀(Yu-na spin)’을 창조했다. 점프하며 회전해 그 힘으로 빙판 위에서도 회전을 이어가는 ‘플라잉 콤비네이션 스핀’ 속에 있는 ‘유나 스핀’은 김연아의 이름을 딴 동작이다.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다리를 뒤에서 잡고 회전을 마무리하는 것이 바로 ‘유나 스핀’이다. 유연성과 균형감각이 필요한 독창적인 응용 동작이다.
2월 26일 4분 8초의 연기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역사에 남을 가장 위대한 연기를 펼쳤다. 아시다 마오나 일본이 김연아의 실수를 고대하였겠지만 망상이었다. ‘동화 속 점수’로 여겨졌던 220점을 가볍게 뛰어 넘어 230점에 육박하는 228.56점이 나와 세계를 경악시켰다. 영국 BBS는 “경쟁자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괴물같은 점수”라고 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연기”(AP), “단 하나의 흠결도 찾아낼 수 없는 연기”(더 타임스), “김연아의 점수는 자신 외에는 누구도 근접할 수 없을 것”(밴쿠버 선)이란 보도는 과장도 과찬도 아니다.
김연아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본다. 7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해 TV를 통해 본 미국의 미셀 콴에 반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땐 운동을 그만 두겠다고 어머니 박미희씨에게 말했다. 맘껏 뛰노는 친구들과 떨어져 매일 빙상장과 학교를 오가며 어머니와 온종일 붙어 있어야 했던 어린 소녀의 투정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지극 정성으로 2003년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IMF 사태 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다. 레슨비와 대관비에 큰돈이 들어가는 피겨를 계속시키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어머니도 2006년엔 스케이트 부츠가 자꾸 망가지면서 김연아의 은퇴를 심각하게 생각했었다. 다른 선수들은 스케이트 부츠 1켤레를 서너 달씩 신는데 김연아는 지독한 연습으로 한 달도 못 신었다. 예뻤던 김연아의 발바닥이 점점 주름에 잡혀갔다.
2006년 11월 시니어 무대에 진출, 첫 그랑프리를 차지한 데 이어 2007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안무가 데이비드 월슨의 지도 속에 해외 전지 훈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김연아는 허리 통증이 심해져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에 진통제를 맞고 출전하는 ‘부상 투혼’을 펼쳤고 고관절부상으로도 고생했다.
누가 ‘김연아의 오늘’을 기적이라고 하는가. 2009년 2월 4대륙선수권대회 우승에 이어 한국인으로선 첫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따냈고 드디어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리고 울었다. 1만6천여명의 관객이 기립한 가운데 감격과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 김연아는 ‘피겨 전설의 주인공’이 됐다. ‘피겨 제왕’ ‘피겨 여신’이 됐다. 그 김연아가 내일 선수단기를 들고 밴쿠버올림픽 태극전사들과 함께 개선한다. 하지만 1박2일의 국내 일정을 마치고 3일 토론토로 다시 돌아가 2010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출전 훈련에 돌입한다.
휴식도 없이 스케이트화 끈을 또 졸라매는 김연아의 모습이 안타깝지만 그러나 개인의 영광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명예를 위하여 김연아의 발은 더욱 못생겨져야 한다. 그 얼마나 ‘아름답게 못 생긴 발’인가. 천상천하에 김연아의 발처럼 ‘예쁘게 못 생긴 발’은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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