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직과 임명직

조선 왕조시대에 영의정과 좌·우의정은 품계가 정일품이다. 지금의 국무총리와 부총리가 이에 해당한다. 장관격인 판서는 정이품이고, 차관격인 참판은 종이품이다. 도지사에 해당하는 관찰사는 정이품 품계다. 이 밑의 수령 방백으로 부사·목사·현감 등이 있는데 종삼품에서 종육품으로, 지금의 시장·군수가 이에 해당된다.

 

6·2 지방선거에 전직 고관들이 자치단체장으로 많이 나서고 있다. 정일품인 국무총리와 부총리를 지낸 사람들이 정이품에 해당하는 광역단체장으로 나서는가 하면, 종이품격의 차관을 지낸 사람이 종삼품 이하격의 기초단체장 예비후보로 등록하기도 했다.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들도 기초단체장에 대거 나서고 있다. 옛날엔 국회의원은 없었으나, 국회의원을 장관 예우로 대하는 정부 의전 규칙에 비하면 이 역시 정이품에서 종삼품 이하를 자원하는 셈이다.

 

품계 하나 올라가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알았던 관념은 지금이라고 달라진 것은 아니다. 공직사회에서 승진은 더할 수 없는 일신의 영예다. 이런 가운데 전직 총리·부총리가 광역단체장, 전직 장·차관이나 전직 국회의원이 기초단체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품계의 하락인데도 경쟁이 심하다.

 

그것은 임명직의 품계와 민선직의 품계는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임명직은 임명권자 한 사람에게만 인정 받으면 오를 수 있는 자리다. 이에 비해 민선직은 다수의 선택에 따라 오를 수 있는 자리인 것이다.

 

제3공화국에서 국회의장을 지낸 대구 출신의 이효상씨는 고향으로 낙향했던 시절에 단위농협조합장을 지냈다.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서 과수원을 했으므로 조합원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관선) 도지사는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지만, 농민이 뽑아준 농협조합장은 영광으로 안다”는 것이 당시 그의 말이었다.

 

전직의 임명직 고관들이 자치단체장을 선호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의 힘이다. 더 말하면 민선의 위력이다. 아울러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임명직보다 민선직이 더 권위와 가치를 지닌다. 지방자치단체장만이 아니고 지방의원 역시 같다. 오는 6·2 지방선거에 유권자들은 이런 ‘민선 의식’을 갖고 투표에 임해야 할 것이다.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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