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환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공보처 장관을 지내면서 정치인과 겪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육두문자를 써가며 누굴 욕하다가도, 정작 그 사람이 나타나면 어깨를 감싸면서 우린 보통 사이가 아닌데…”라며 태도가 표변한다는 것이다. “그런 게 정치라면 나는 정치인은 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이란 말이 있다. 입으로는 꿀처럼 달콤한 말을 하면서도 뱃속엔 상대를 해칠 칼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당나라 현종조 재상이던 이임보에 관한 고사다. 양귀비에 현혹된 현종을 제쳐두고 온갖 전횡으로 수뢰를 일삼으면서, 이를 탄핵하는 충신에게 입으로는 좋은 말을 하면서도, 맘속으로는 제거할 궁리를 만들어 주살하곤 한 데서 유래됐다. 중국이 원나라 때 열여덟 나라의 사서를 모아 만든 ‘십팔사략’(十八史略)에 전한다.
6·2 지방선거를 맞아 정치권의 ‘구밀복검’이 더 심해졌다. 중앙정치권은 중앙정치권대로, 지방정치권은 지방정치권대로 그렇다. 예컨대 같은 지역의 자치단체장 예비후보끼리는 정적이다. 이런데도 서로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하는 것은 모양새는 좋으나, 속으로는 칼을 가는 사이다. 상대가 있는 데선 덕담을 하고도, 돌아서서는 악담을 퍼붓는다. 자치단체장 예비후보만이 아니고 광역·기초의원 예비후보들도 마찬가지다. 또 예비후보들만도 아니다. 예비후보 참모들인 선거꾼끼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광역단체장 후보 단일화 판도 역시 다르지 않다. 입으로는 서로 단일화를 말하지만, 자신이 양보하는 것은 생각조차 않는다. 저마다 상대들이 물러가는 단일화만 염두에 두고 단일화를 외친다. 이래서 단일화 논의를 위해 서로 만나면 얼굴은 만면에 웃음을 띄우지만, 맘속으로는 상대를 물리칠 칼 가는 궁리에 바쁘다.
수원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던 한 유력 인사가 아깝게 실패하고도 시장 선거 등 선거 때면 으레 매스컴에서 후보군으로 거명되곤 했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에게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거, 그것 두 번 다시 치를 게 못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임양은 본사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