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여주 군수가 지난 16일 졸지에 분당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그는 아마 이범관 국회의원을 원망할지 모른다. “돈을 안 받으면 됐지, 경찰까지 끌어들일 건 없지 않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법리상 즉시 돌려주지 않고 나중에 돌려주면, 일단은 받은 것으로 보는 의심이 성립될 수 있다.
이 군수 수행비서가 테이프로 봉인된 쇼핑백을 이 의원 비서에게 ‘군수님의 기념품이니 받아두라’며 전한 게 이날 오전 8시께다. 서울 서초동 커피숍에서 이 군수의 요청으로 잠깐 얘길 나누고 나온 이 의원은 기념품을 보고 수상히 여겼으나 이 군수는 벌써 떠난 뒤다. 이 의원 지시로 비서들이 이 군수 차를 추적한 곳은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지점으로 추적 30분 만이다. 톨게이트 현장에서 지원 나온 경찰이 의문의 기념품을 개봉하자 돈뭉치가 나왔다. 5만원짜리를 100장씩 묶은 돈다발이 40개가 들어 있었다. 2억원인 것이다. 현재 여주군수 한나라당 공천 신청자는 이 군수를 포함해 4명이다.
이 의원으로서는 황당할 것이다. 지역구 군수가 찾아와 만나자고 하는데 굳이 안 만날 수도 없어 만난 것이 하마터면 누명을 쓸 뻔 했으니, 사람 만나기가 겁날 것이다.
문제는 이 군수에게 있다. 경기도청에서 국장과 부시장까지 지낸 행정관료 출신이다. 이런 사람이 돈뭉치 로비를 시도한 것은 실망이다. 2억원의 출처도 의심된다. 그 역시 기념품으로 받아 챙긴 돈이 아닌가 싶다.
‘하늘의 그물코가 엉성한 것 같아도 걸러낼 것은 결국 걸러낸다’고 했다. 노자(老子)에 나오는 말이다.
잘은 몰라도 그날 아침 이 군수는 이 의원을 찾아 “앞으로 잘할 테니 공천을 받도록 부탁한다”고 했을 것이다. 물론 돈을 보면 퇴짜 놓을 것이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잘못 봤다. 이범관 의원은 대구지검 검사로 출발하여 인천지검검사장까지 지낸 원로급 검찰 출신이다. 사석에선 다정다감해도 일처리는 칼날같아 공사가 분명하기로 정평났었다. 검찰을 떠나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소신에 맞지 않은 사건은 선임료를 많이 준다 해도 맡지 않고, 딱한 사건은 도와주곤 했다.
돈뭉치를 어쩔 수 없이 경찰에 넘기긴 했어도, 이 군수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영장이 신청된 것을 안타깝게 여길 것 같다.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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