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아이들을 위해 출근해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 그들에게 어린이날은?
일년에 딱 한번. 부모가 자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의무가 있는 날이 바로 어린이날이다. 하지만 생계 때문에 이날도 여전히 일을 해야 하는 부모들이 많다.
특히 놀이 공원이나 대형 쇼핑몰은 어린이날이 대목이라 쉬는 것은 더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자녀가 있는데도 출근해야하는 부모들에게 어린이날은 어떤 의미일까?
롯데월드 엔터테인먼트팀의 무대업무를 담당하는 서상운(41)씨는 어린이날을 비롯해 휴일은 평소보다 더 바쁘다.
4살, 7살, 9살배기 세 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서씨는 남의 자식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느라 자기 자식들에게 신경쓰지 못하는 것이 매번 미안하다.
"친구들은 쉬는 날 자기 아빠랑 놀러 다니는데 나는 출근을 해야하니까요. 매번 다음에 가자고 약속은 하는데 지키지 못해 미안하죠"
놀아 달라고 칭얼대는 아이들을 떼어내고 출근길에 오르는 마음은 그야말로 곤혹스럽다.
16년간 놀이공원에서 근무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해야 하는 날에는 거의 쉬어본 적이 거의 없다는 서씨는 "남들이 쉴 때 가족들과 같이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내비쳤다.
서울 구로구의 한 백화점 제과매장에서 일하는 박 모(40대 초반)씨도 초등학생인 두 자녀들을 할머니댁에 맡기고 어린이날 어김없이 출근길에 오른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려고 직장생활을 오래했다는 박씨는 이맘때가 되면 아이들을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든다고 한다.
"직장 다니는 부모들 다 마찬가질거예요. 특히 판매직 같은 경우에는 일반 직장인보다는 더 장시간으로 일하거든요.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들이 제일 안타깝고 불쌍하죠"
개구쟁이 막내에게 사줄 선물은 골라놨지만, 흔한 이벤트 없이 어린이날을 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신도림역 근처 대형마트의 완구점에서 근무하는 김 모(43)씨는 어린이용 선물을 파느라 바쁘지만 자녀들의 선물은 미쳐 챙기지 못했다.
"먹고 살려니 어쩌겠어요. 애기 엄마한테 돈을 줬는데, 아이들 선물을 준비했는지 모르겠네요"
김씨는 "휴일에 쉬지 못하는 아빠의 사정을 뻔히 알고, 아이들이 이제 놀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며 고개를 떨궜다.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주부 이 모(47)씨도 부족한 생활비, 학원비에 보태기 위해 8개월전부터 대형마트에서 계약직 판매업무를 시작했다.
어린이날도 부부가 모두 근무한다는 이씨는 "아이들만 혼자 집에 두는게 솔직히 마음이 아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초등학생 자녀가 있어서 저만 쉰다고 말하기 힘들어요. 아이들이 서운해하기는 하는데 할 수 없죠"
아침에 밥을 해주고 나가기는 하지만 썰렁한 집에서 혼자 보낼 아이들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감정이 밀려온다.
생계 전선에 뛰어드느라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돌보지 못하는 맞벌이 부모들. 팍팍한 근무 환경 속에 있는 서비스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어린이날은 생계의 버거움을 느끼게 하는 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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