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에 승용차격이 인격으로 잘못 인식된지는 오래된 고질이다. 예컨대 어느 기관이나 기업을 방문해도 방문자가 타고간 차격에 따라서 대우가 다르다. 고급 승용차 같으면 대문을 지키는 경비실의 자세가 정중하다. 반면에 보통 승용차 같으면 태도가 마뜩찮다.
승용차의 품격에 따라 승차인의 품격을 정비례시 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지닌 보편적 심리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너무 심한 것이 한국 사회의 병폐다. 어떤 상습 사기범이 외제차를 굴렸다. 그의 말이 가관이다. “희귀차를 굴려야 사기가 잘 통한다”는 것이다. 고위층을 빗대어 납품 사기로 거액을 편취한 사람이다.
형편이 닿아 좋은 차를 굴리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그 같은 사회적 소비도 필요하다. 가수 조용필씨는 외제차를 탄다. “사치로 타는 것이 아니고 안전을 위해서다”란 그의 말은 이해할만 하다. 내가 그 말을 들었을적만 해도 여기 저기에 지방공연이 잦았던 터라, 안전운행을 위해 벤츠 같은 외제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문제는 삭월세 집에 살아도 차는 고급차를 타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심리다. 이런 고급차 소유 중독이나, 고급차 앞에선 쪽을 못쓰는 저자세 증후군이나 알고 보면 다 허영심이다.
그런데 고급 승용차 병리현상은 개인만이 아닌 것 같다. 동아일보(5월31일자)가 전국의 248개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단체장 관용차에 흥미스런 결과가 보도됐다. 배기량 2500㏄ 이상의 장차관급 승용차를 굴리는 단체장이 28군데에 이른다. 재정자립도는 20%도 안 되면서 최하 4천여만원에서 최고 6천여만원 가는 오피러스, 베라크루즈, 제니시스 같은 고급 승용차를 탄다는 것이다.
궁금한 건 자치단체 살림은 가난하면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단체장들 마음이 과연 편안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 같은 가책을 받지 않는다면 단체장의 자질이 있다 할 수 없다. 고급 승용차를 타야 행세할 수 있다고 여기는 단체장은 사고방식의 결함이다. 경기도내엔 재정자립도 20% 미만의 자치단체가 많지 않긴 하나, 그런 단체장의 자치단체가 한 군데도 없는 것은 이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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