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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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65세 이상 노인 535만명 중 73만8천여명이 정서적·신체적 학대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지난해 4월부터 1년간 실시한 ‘전국 노인학대 실태’ 조사 결과다. 노인학대의 실제 상황은 조사된 수준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광범위할 게 분명하다.

 

학대 가해자의 50.6%가 자녀, 23.4%는 배우자, 21.3%는 자녀의 배우자라고 한다. 자녀세대에 의한 학대가 전체의 71.9%를 차지한다. 비참한 사회상이다.

 

자녀세대가 노부모에게 저지르는 학대는 정서적 학대나 경제적 학대, 방임, 유기 등이라고 한다. 핵가족화와 물질 만능주의, 전통적 가치관인 효사상의 약화 등 사회적 환경이 크게 변화한 데다 부양을 위한 경제적 부담을 견디기 힘든 열악한 현실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노인학대 신고 건수가 2008년 한해 2천369건, 학대로 인한 상담건수는 2008년 3만5천467건이나 된다. 가출노인도 2008년 4천266명이다. 학대를 받으면서도 이를 숙명으로 여기며 자식을 감싸주기만 하는 노인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노인보호전문기관을 확대하고 노인학대 문제 해결을 위한 상담체계 구축이나 교육 등 예방조치를 강화해야 한다. 법적 차원의 보완도 요구된다. 지난해 각 시·도 노인보호기관에 접수된 2천674건의 노인학대 신고 중 11건만 기소됐고 실제 처벌은 2건만 이뤄졌다. 부모나 조부모 등 존속 폭행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노인에게 폭력을 휘둘러 다치게 한 사람의 형량을 높이고 존속 폭행을 반의사 불벌죄 대상에서 배제하는 등의 법률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라도 노인학대를 몰아내려는 게 서글프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늙은 부모를 학대하는 사람들이 지극히 상식적인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뜻을 모르는 사실이다. 자신들은 늙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일이다. 부모를 학대하는 사람들은 자기들도 후일 자식들에게 학대를 받는다. 오죽하면 6월 15일을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로 정했는가.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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