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왕따’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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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따돌림 ‘왕따’ 현상이 심각하다. 주로 경로당에서 발생한다. 노인들의 지상천국으로 칭송되는 모범 경로당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적지 않다. 공공기관에서 세운 경로당의 경우 형식상으로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노인은 출입이 어렵다. 일부 경로당은 2천~4천원의 월회비를 임의로 정해 놓고 회비를 내지 못하는 노인들은 접근조차 불허한다. 기초생활수급자는 무료 도시락이 제공되거나 돈 안 내고 점심을 먹을 수 있지만 그 외의 노인들은 밥값을 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은 왕따를 당한다. 관리나 운영을 실세(實勢) 노인들이 직접하면서 힘 없는 노인들을 박대한다. 가족의 부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인들은 어딜 가나 서럽다. 경로당 내에서도 재력이나 차림새 등으로 차별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아파트단지마다 있는 경로당도 거의 비슷한 분위기다. 회원 수가 20~30명인 경로당은 비교적 깨끗하고 공간도 넓다. 점심도 무료로 주고 별다른 출입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소득층 노인들에겐 언감생심이다. 아파트 주민이냐 아니냐가 무언의 벽으로 작용한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노인학대 행위자 10명 중 3명 이상이 노인이다. 노인들이 가정에서 소외되고 학대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또래 집단에서도 왕따를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심한 경우 물리적 학대로까지 이어진다. 늙은 자녀가 고령의 부모를 학대하는 모습이 한없이 서글프지만 경로당 등 사회시설 내부에서 일어나는 노인끼리의 학대도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노인학대 중엔 언어와 정서적 폭력을 쓰는 행위가 40% 이상을 차지한다. 신체적인 폭력도 22%나 된다.

 

고령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자녀들의 불효다. 함께 지내는 아들 내외가 해외여행을 가면서 집 열쇠를 안 주고 갔기 때문에 경로당에서 지내던 84세의 노인이 일주일 뒤 경로당에서 쫓겨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자식까지 있는 멀쩡한 노인네가 뭐 하러 여기서 먹고 자느냐”고 경로당 회원들이 내쫓았다고 한다. 인생의 깊이를 알 만한 노인들의 처사가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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