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대(代)를 잇는다는 게 도대체 뭡니까?” 코미디언 백남봉(45), 그는 이미 맏딸은 시집보내어 외할아버지가 되어있고, 지금은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제사를 말하는 건가요? 딸도 자식이니까 알아서 하겠죠.” 그가 아들 딸을 가리지 않는 자기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오래전에 굳힌 생각인 것 같다.(중략) 전북 진안에서 출생, 두살 때 아버지의 사업관계로 평양 근처 진남포로 이사해 살다가 8·15 해방을 맞아 서울로 왔다.
6·25 동란은 그에게도 큰 상처를 주었다. 아버지를 잃은 것이다. 국민학교 시절에 해본 구두닦이를 비롯하여 옷장사, 열차판매원, 공사판 인부노릇을 해가며 학교를 전전했는데,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배정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만큼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을 비관해본 적은 별로 없었어요.” 물론 인정을 모르고 자란 탓에 삐뚤어진 눈으로 세상을 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매우 강하게 타고난 낙천적인 기질이 그때마다 그런 잘못된 생각을 떨쳐버리게 했고, 그로 인해 코미디언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불우한 환경에서도 주위사람들을 곧잘 웃긴 그는 장소팔이 이끄는 쇼단체에 들어가 팔도사투리를 주무기로 원맨쇼를 했다. 연예계에 데뷔한 것은 64년도. 백남봉은 중견 코미디언으로 이제 안정된 기반을 다졌다. ‘전국일주’ 리포터를 10개월동안 해오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중략)
처음 한동안은 자문자답하는 버릇이 있었다. 상대에게 물어놓고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는 지레짐작의 자기말을 이어가곤 한 것이다. ‘이 고약한 습관’을 고쳐준 사람이 바로 그의 부인 이순옥씨(45). 양어깨를 치켜올린 점잖지 못한 걸음걸이도 아내 때문에 고쳤다고 한다.
경북 성주가 고향인 부인 이순옥씨 또한 아들 딸을 가리지 않는데, 그녀에겐 여장부 같은 면모가 있는듯. 백남봉은 좀처럼 넥타이를 안매지만, 어쩌다 넥타이차림을 할 땐 아무리 바빠도 절대 뛰지 않는다. 이 역시 아내의 권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상은 필자가 KBS 별관서 가졌던 고인의 생전 인터뷰 기사다(1984. 8.4 ‘TV가이드’). 그를 추념하며 옮겼다. 이제 분당 메모리얼파크에 잠드셨다. 박두식 선생(본명) 편히 쉬소서.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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