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점에서는 지방자치를 실감한다. 민선 5기가 벌써 두 달도 더 지났다. 수원시장이 민주당 사람으로 바뀌고 나니까, 시청 주변의 인맥 형성 판도가 달라졌다. 전에 한나라당 시장이던 때와는 영 다르다. 신 인맥이 떠오르면서 구 인맥은 잠복했다. 유지 등 민간 지배계층 구도에 변화를 가져왔다.
수원만이 아니다. 경기도내 31개 기초자치단체 중 민주당이 무려 19개 자치단체를 휩쓸어 한나라당은 겨우 10개 자치단체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나머지 두 군데는 무소속이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에 다시 정리해 본다. 수원·성남·고양·부천·용인·안산·안양·의정부·평택·시흥·화성·광명·파주·군포·김포·구리·오산·하남·의왕 시장 등은 민주당 출신이다.
한나라당 출신의 시장·군수 자치단체는 남양주·광주·이천·양주·안성·포천·여주·양평·과천·연천 등 시장·군수다. 동두천 시장과 가평 군수는 무소속이다. 그런데 이를 지도로 보면 좀 묘한 데가 있다. 대체로 민주당은 서쪽을 차지하고, 한나라당은 동쪽을 차지한 ‘민서·한동’의 강세가 뚜렷하다.
자치단체장이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뀐 다른 시·군 역시 수원과 같은 양상일 것이다. 전에 민주당 출신의 자치단체장이 한나라당으로 바뀐 덴 없다. 이래서 한나라당이 실각한 자치단체의 지역사회 인맥 부침이 묘해 더 흥미롭다. 이에 유독 수원시를 드는 것은 경기도의 수부도시로서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원에서는 이를테면 여야가 바뀌었다. 한나라당이 ‘여대야소’의 집권여당이란 것은 중앙정치 얘기다. 경기도의 광역정치는 도지사가 한나라당 출신이므로 한나라당을 여당으론 볼 순 있으나 도의회는 ‘여소야대’다. 이에 비해 수원은 시장이 민주당일 뿐만 아니라, 시의회도 민주당이 지배한다. 명실공히 지방자치의 집권 여당이다. 지방자치의 여야 관념을 중앙정치 종속에서 벗어나, 이제 독립적 개념이 가능하다면 ‘수원 천하’는 민주당이 여당인 세상이다.
이만도 아니다. 수원에 그치지 않는 화성·오산·용인·그리고 안산·군포·의왕 등 경기도 수부를 둘러싼 민주당 출신 시장 일색의 주변 도시가 수원시를 중심으로 세를 형성하는 추세다. 전에 수원시를 비롯, 역시 수원 주변의 도시가 한나라당 출신의 시장 일색이던 때와는 또 다른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지방행정의 광역화 협의체계로 보면 긍정적이다.
그러나 문제가 없진 않다. 지방정권이 중앙정치의 정략화로 가면 지역사회 공익을 저해한다. 가까운 예를 들어 간단히 말하겠다. 현안의 수원비행장 비상활주로 폐지 및 이전을 추진하여 성사시킨 선거구 국회의원이 한나라당 사람인데, 민주당 국회의원이 좀 다른 말을 한다고 해서 이에 편들어 민주당 출신 수원시장이 비상활주로 이전 분담금 부담을 거부한다면, 당파의 시장이지 시민의 시장은 아니다.
기초자치단체장, 즉 시장·군수의 정당 공천제 배제 논의가 있었다. 장단점이 있어 한마디로 단언하기가 어려운 문제다. 참고로 말하면 무릇 제도의 문제점은 제도 자체보단, 제도를 잘못 운용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을 때가 많다. 이 점에서 지방자치 역시 이당 저당이 번갈아 자치단체장을 맡는 것이 발전이 있다면 정당 공천제를 보완해 좀 더 두고 볼 필요 또한 없는 것은 아니다.
정작 역겨운 것은 염량세태다. 잇속을 챙기는 것이 인간이라지만, 그래도 인간다운 체면은 차릴 줄 아는 것이 역시 인간이다. 고사를 예로 든다. 병자호란 때다. 남산골 선비 이 생원이 청군에 납치된 아내를 수소문 끝에 청량리에 주둔하고 있는 용골대 군영을 찾았다. 미인으로 소문난 이생원 처는 이미 용골대의 정부가 돼 있었다. 화려하게 몸치장을 한 그녀는 남편과 고생했던 게 지겹다며 그를 죽이라고 용골대에게 애원했다. 너무나 달라진 아내에 남편은 모든 것을 체념, 그만 눈을 감았고 용골대의 칼은 기합 소리와 함께 번쩍 했으나 시신이 된 것은 변심한 여인이었다.
민주당 사람의 새 수원시장이 들어서고 나서 형성돼가는 인맥 가운덴, 용골대의 야사를 생각게 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여기서 이 말 하고, 저기서 저 말 하기 일쑤인 이런 위인들은 백해무익하다. 나중에 선거 때 표도 안 된다. 수원시장은 철새떼처럼 몰려드는 주변 사람들을 가릴 줄 아는 것이 사는 길이다. 지역사회의 발전 또한 이에 있다. 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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