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밝힌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시스템 개선안’은 말이 좋아 자기검증서지 곧 ‘사전 청문회’ 질문사항이다. 만일 200가지 질문을 무사히 통과하는 공직자들이 있다면 가히 ‘청백리(淸白吏)’ 반열에 오를 수준이다. 그쯤 되면 ‘8·8 개각’ 때 총리 후보, 장관 후보 2명을 낙마시킨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청백리는 조선시대 사헌부·사간원 수직(首職) 등의 추천을 받아 공식으로 인정한 청렴한 관직자다. 염근리(廉謹吏)라고도 한다. 고려시대엔 염리(廉吏)로 불렸다.
청백리는 청귀(淸貴)한 관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품행이 단정하고 순결하다. 자기 일신은 물론 가내까지도 청백하여 오천(汚賤)에 조종되지 않는 정신을 가졌다. 적극적 의미의 깨끗한 관리를 가리킨다.
청백리 정신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청렴 정신은 탐욕의 억제, 매명 행위의 금지, 성품의 온화성이다. 선비 사상과 함께 백의민족의 전통적인 민족 정신이며 이상적인 관료 사상이다. 청백리가 지켰던 공직윤리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무엇보다 청렴·근검·도덕·경효·인의 등을 중시했다.
수기치인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백성을 위한 봉사 정신 등 개인적인 생활 철학으로 정립됐고 나아가 공직자의 윤리관으로 확립됐다.
‘인사검증시스템’은 바로 청백리의 위치에 올랐거나 오를 만한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옛날이 좋았다”는 말이 나왔던 것 같다. 대통령 말 한마디면 총리, 부총리, 장관이 됐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 안 날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이명박 정부가 고위공직자가 될 사람들에게 던진 200가지 질문에 그야말로 윤동주의 ‘서시’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도 걱정스럽다. 기우(杞憂)였으면 좋겠다.
아닌 게 아니라 이달 초 청와대가 총리 인선후보를 늘리기 위해 정치권 인사를 포함한 5, 6명에게 자기검증서를 보냈다고 한다. 본격적인 인사검증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단계였다. 하지만 회신한 사람은 1, 2명에 그쳤다. 그러니까 나머지 인사는 ‘사전 청문회’도 무서워 손을 들었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청와대 사전 청문회의 위력도 대단한 셈이다.
새로 마련한 인사검증시스템은 양적 검증보다 ‘질적 검증’을 한층 강화했다. 검증 내용들은 ‘8·8 개각 후유증’ 극복에 초점을 맞췄다. 인사청문회의 단골 메뉴인 부동산 투기, 병역, 탈세,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은 물론 항목 자체도 150개에서 200개로 대폭 늘었다. 집권 후반기를 맞아 ‘공정한 사회’를 키워드로 내건 이명박 정부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총리 후보자 및 장관 내정자의 낙마’를 거치면서 큰 타격을 받은 만큼 다시는 그런 불상사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각오가 역력하다.
예컨대 재산 형성 과정에서 ‘최근 5년간 본인·배우자·자녀의 신용카드·체크카드·현금영수증 연간 합계액이 총소득의 10%에 미달된 적이 있나’란 질문이 추가됐다. 김태호 전 총리 후보자 청문회 때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특히 새로 추가된 40여 개 문항은 본인은 물론 배우자와 자녀들까지 대상으로 해 평소 같으면 크게 개의치 않고 넘어갈 사생활의 작은 부분까지도 혹독할 정도로 캐묻는다. 향후 고위 공직자에 오를 수 있는 ‘인재 기준’에 엄격한 잣대를 새롭게 마련한 것이어서 이의를 달 사람이 없다.
이제 고위공직 후보자는 ‘예비 후보로서 자기검증서 작성 후 양적 검증 → 주변 탐문과 정황 증거 등 질적 검증 → 인사추천회의에서 면접(모의 청문회)’의 3단계를 거쳐야 최종 후보자로 확정·발표된다. 이 과정을 거쳐도 매서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된다. 누가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설 것인가.
궁금한 건 ‘200가지 질문’ 작성자들이다. 과연 그들은 200가지 질문에 하자가 없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속담에 ‘청백리 똥구멍은 송곳 부리 같다’고 하였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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