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대마도(對馬島)는 본래 신라(新羅)에 소속됐던 땅으로 차차 왜인(倭人)들이 와서 거주하게 되면서 일본땅으로 변하게 됐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권). 고려 말·조선 초에 왜구를 근절시키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한 일이 있었다. 왜구는 13세기로부터 16세기에 걸쳐 한반도와 중국연안에서 준동한 일본인의 해적 집단을 총칭하는 것으로 고려 말·조선 초 약 70년간 우리나라 연안 각지에 침입하였다. 특히 고려 말 40여년간은 왜구가 창궐하여 피해가 극심했다. 조선의 대마도정벌은 1396년(태조 5)과 1419년(세종 1)에 있었다. 세종 원년 이종무(李從茂· 1360~1425)는 9절제사를 거느리고 대마도 정벌길에 올랐다. 그때 동원된 병선이 227척, 군사는 1만7천285인으로 65일간의 식량을 준비하였다. 왜구의 규모를 짐작게 하는 대병력이었다. 대마도 정벌은 조선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왜구가 근절되진 않았다.

 

대마도의 영유권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여야 국회의원 37명으로 이뤄진 ‘대마도 포럼’을 두고 여론이 찬반으로 갈린 것은 이 같은 대마도의 역사성 때문이다. 허태열 대표는 “대마도 주민은 혈통적으로 일본 본토인보다 한국인과 더 가까울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한국이 97㎞나 가깝다”고 주장한다. 대마도는 역사·문화·인종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기본 인식 아래 대마도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한 맞불 차원의 감정적이며 국수적인 대응은 오히려 국내외적인 설득력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일본 국민들의 감정만 훼손해 한일 간의 친선 증진에 역기능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근우 부경대 대마도연구센터 소장은 “현재 일본 영토가 명백한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까지 잃게 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지리적으로 한국에 가깝다는 것 말고는 독도처럼 한국이 영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잖아도 일본은 중국과의 외교전에서 쓴맛을 보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마도포럼 창립이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대마도가 원래 신라 땅이었다는 분명한 사료 등을 제시하는 게 우선적인 일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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