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도둑

농산물 도둑에 룰이 있었다. 벼도둑을 예로 든다. 벼를 가마니에 담아 광이나 곳간에 놔둘 때 비로소 훔치는 대상이 된다. 들에서 멍석에 깔아 말릴적엔 훔치지 않는다. 보릿고개가 있었던 절대적 빈곤시대에도 이러했다.

 

근데 지금은 들에서 벼를 말리지 못한다. 밤엔 집으로 거둬들이기 귀찮기 때문이다. 거둬들이지 않으면 도둑맞기 십상이다. 예전처럼 못먹고 못사는 것도 아닌데 도둑 심보는 더 나빠졌다. 농산물 도둑에 그래도 한가닥 양심이 있었던 룰이 깨졌다.

 

인삼밭 도둑도 전엔 없었던 도둑이다. 삼포집 주인들이 밭지키기에 애를 먹는다. 김장고추 값이 비싼 해엔 고추도둑이 성행했었다. 고추를 따가는 것이 아니다. 밤에 고추대를 뿌리채 뽑아 타이탄 트럭에 싣고 도망치곤 했다. 남의 한해 농사를 완전히 망치는 아주 몹씁 밭도둑이다.

 

집도둑은 있어도 밭도둑은 없었던 것이 이렇게 성행하더니 올핸 또 한가지가 늘었다. 배추파동으로 채소도둑이 극성인 모양이다. 안성시 일죽면 43개 마을 이장단이 채소도둑 등쌀에 회의까지 열었다니 그 고초가 짐작된다. 얼갈이 배추·열무·상추밭 등에 순찰을 강화하고 시설하우스 주변에 CCTV를 설치키로 했다는 것이다. 채소밭 도둑은 안성만이 아니고 용인 등지에서도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며칠 전에는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서 통마늘 5㎏ 분량을 말리려고 대문앞에 놔둔 것을 훔친 60대 이웃집 여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농산물을 둘러싼 밭도둑, 집도둑이 설치는 세태가 됐다.

 

사람 사는 인심이 점점 더 고약해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어쩌다 이지경이 됐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밭농사 한가지에 아흔아홉번의 손길이 간다’는 옛말이 있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 농사다. 흔히 “시골가서 농사나 짓는다”고 말하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농사나”가 아니다.

 

올 한 해 동안 작물을 가꾸는 것만도 큰 힘이 들었다. 이로도 모자라 가꾼 작물을 지켜야 하니 농민들의 고초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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