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밥상’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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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3대 왕 태종이 음양오행에 따라 궁중음식을 마련하는 기본 원칙과 나라가 가뭄과 홍수 같은 재난에 처했을 때 반찬 가짓수를 줄이거나 아예 밥상을 물리는 감선(減膳), 고기반찬을 줄이는 철선(撤膳) 등을 시행한 이래 후대 왕들은 이를 본받고 적극적으로 따랐다. 유교이념에 입각해 혼자 배 부르고 맛나게 먹지 않고 만백성과 더불어 먹기를 지향했기 때문에 조선시대 왕의 식사는 자신의 입과 위장을 통해 세상을 돌아보는 행위이기도 했다. 하지만 진성대군(중종)을 앞세운 신하들의 반정(反正)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31세의 나이에 강화 교동의 유배지에서 죽은 제19대 왕 연산군(재위 1494~1506)은 즉위 초부터 희귀하고 값진 먹을거리만 찾았다. 성균관대 국가경영전략연구소 함규진 박사의 저서 ‘왕의 밥상’에 따르면 연산군은 중국산 검은 엿부터 사슴 꼬리와 사슴 혀, 바다거북, 돌고래, 왜전복(倭全鰒), 소의 태아 등 남다른 식탐을 드러냈다. 연산군은 철선과 감선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천인감응론(天人感應論·하늘과 사람이 긴밀히 연결돼 있어 인간 사회에 큰 폐단이 있으면 자연히 하늘의 경고나 견책이 이뤄진다는 설)이나 음양오행론에 회의적이었다. 연산군이 가장 존경했던 제7대 왕 세조는 정작 폭군 이미지와는 달리, 먹고 마시는 문제를 진지하게 여겼고 균형 잡힌 식습관을 바탕으로 세상의 조화를 꿈꿨다. 사옹방을 사옹원으로 확대 개편하는 등 조선 궁중의 음식 관련 기구를 완성했으며 국내 최초 요리서인 ‘산가요록’과 최초의 식이요법서인 ‘식료찬요’를 편찬했다.

 

‘성군(聖君)의 길’을 걸었던 제4대 왕 세종은 노년에 소갈증(당뇨병) 등 온갖 병 때문에 마른 몸에 얼굴 빛은 파리하고 기침이 그치지 않는 ‘가련한 노인네’ 몰골이었을 것이라고 함 박사는 추정한다. 더위 먹은 증세를 보인 제9대 왕 성종은 물에 만 밥을 자주 찾았으며 술과 담배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제22대 정조는 중년에 접어들며 안질과 등창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려 실제 나이보다 10년 정도 늙어 보였다고 한다. 음양오행과 의식동원(醫食東源)설에 입각한 양생을 추구했던 조선 왕들의 평균수명은 47.07세였다. 배추값이 오르니까 “내 식탁에 배추 대신 양배추김치를 올리라”고 한 이명박 대통령이 요즘 양배추김치만 먹고 있는 지 궁굼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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