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오역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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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를 위주로 한 한국 문학작품이 영어로 번역되면서 잘못 전달된 사례를 소개한 한국외국어대학교 김욱동 통번역학과 교수의 논문 ‘한국 문학의 영문 오역’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논문에 실린 11건 가운데 한용운의 ‘임의 침묵’ 오역은 충격적이다. 원문은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갓슴니다”인데 뜬금없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였듯이 당신도 나를 사랑하였다”는 구절이 삽입됐다. 더구나 번역된 시의 제목은 ‘Meditation of the Love(님의 명상)’이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라는 구절은 “강도가 모든 빛을 빼앗아갔습니다. / 산에서는 푸른 빛을 / 계곡에서는 붉은 빛을”로 바꿔 놓았다. 보스턴대와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뉴욕대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했던 한국 문학의 권위자 강용흘(1898~1972) 선생의 번역이란다. 원문의 ‘적은 길’을 적(賊)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함께 번역한 미국인 아내 킬리 여사가 한국어에 능통하지 못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 같다.

 

이문열 작품 ‘시인’에 나오는 ‘백수(白首)’라는 뜻은 동양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뚜렷한 벼슬이나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인 단어인데 번역자 티크는 초판번역본에 ‘grey-haired(흰머리)’라고 번역했다. 정지용의 시 ‘비로봉’ 마지막 구절 “흰 돌이 / 우놋다”는 “흰 들이 웃는다”가 돼 버렸다. 번역자 키스터 신부가 민음사의 ‘정지용 전집’을 보고 번역했기 때문이다. 민음사의 책에 ‘흰 돌’이 ‘흰 들’로 잘못 나와 있었다고 한다. 또 ‘우놋다’는 우리 고어로 ‘울다’라는 뜻인데 번역자는 정반대의 뜻인 ‘웃는다’로 잘못 해석했다. 신라 향가 ‘제망매가’를 번역한 호주 외교가 부조도 원문과는 사뭇 다른 번역을 해놓았다. 현대어로 옮긴다면 “삶과 죽음의 길이 / 여기에 있음이 두려워(머뭇거리며) /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갔는가” 정도의 뜻이 될 테지만 한 구절도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한국 문인 중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은 것은 번역 문제 탓도 있다. ‘번역의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2명 배출했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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