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애

‘옛 분위기 그대로 추억을 팝니다’는 며칠 전 본지 경제면에 보도된 기사 제목이다. 접객업소의 인테리어나 메뉴에 선술집 등 복고풍이 분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새마을운동을 모티브로 한 ‘새마을식당’도 있어 인기를 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새마을운동은 대단했다. 1970년 4월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도지사 회의에서 제창해 시작된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운동은 국민정신을 개조했다. 단군 이래 수천년 동안 줄곧 그 모습이던 농촌을 일신시켰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고 했던 새마을 노랫말대로 전국 방방곡곡의 농촌에서 주막과 도박, 가난을 추방한 것이 새마을운동이다.

 

선술집은 영어로 스탠드바, 일어로는 다찌노미다. 스탠드바는 바텐더와 손님이 카운터를 가운데 두고 상대하는 술집이다. 다찌노미는 ‘서서 마신다’는 뜻이다. 우리네 옛 선술집은 주로 도회지 풍물이다. 나무로 짠 길다란 술청 앞에서 선 채로 술을 먹던 집이다. 술은 막걸리다. 한 되 술은 찌그러진 주전자에 담고 낱잔으로 파는 대포는 한 사발이 한 잔이다. 안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김치·깍두기가 안주의 전부다.

 

가난했던 그 시절이 왜 추억이 되는 것일까,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은 인간애 운동이었다. 더불어 살아가는 믿음의 구심체였다. 선술집은 인정이 넘쳤다. 미국 서부의 스탠드바처럼 총잡이가 있던 것도 아니고, 일본의 다찌노미처럼 사무라이가 설쳤던 것도 아니다. 우리의 선술집은 민초들이 한잔 술로, 요즘 말로 하면 하루의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끼리도 시선이 마주치면 눈웃음을 나누곤 했다. 비록 없이 살아도 사람 냄새 나게 살았던 얘기가 어찌 새마을운동이나 선술집뿐이랴, 이 밖에도 많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풍요 속에서 산다. 그런데 사람이 두려운 세태가 됐다. 집 방문객에게 문도 제대로 안 열어준다. 이웃끼리 별미를 만들면 나눠 먹었던 예전과 달라서, 혹시 누가 음식을 줘도 반갑잖게 여겨 버리기 예사다.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세상이 됐지만, 마음의 문을 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복고풍을 통해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욕구다. 복고풍보다, 현대풍의 사람이 반가운, 사람냄새 나는 인간애의 사회 건설이 있어야 겠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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