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매 맞는 일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가집 자제를 따라다니며 경호도 하고, 한편으론 탈선을 하지 못하게 하는 감시역할도 하는 하인, 종들이 그들이었다. 그런 경우 모시는 대가집 자제가 기방을 드나들거나 탈선을 하면 그를 징계하는 대신 종이 혼찌검을 당해야 했다. 종이 매를 맞는 아픔을 보면서 장본인이 간접적인 아픔을 느끼게 하는 수단이었다.
모시는 양반 상전이 잘못을 저지르면 벌금을 물고 종이 대신 관가에 끌려가 상전 대신 매를 맞는 경우가 제도화됐던 시절도 있었다. 그 또한 종이 매를 맞음으로 양반 상전에 망신을 주고, 간접적으로 아픔을 느끼게 하고자 하는 방식이었다. 잘못은 더러운 상전이 저지르고 매는 선량한 종이 맞는 일이었다.
실업자 청년이 길거리에서 매를 맞아주고 돈을 버는 직업인으로 나선 얘길 담은 영화가 있었다. 권투 글러브를 낀 사람이 때리면 그대로 얻어 맞고 돈을 받는 직업(?)이었다. 이 시대를 비웃는 하나의 풍자극이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다면 아마 세상살이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거나 아니면 자신의 주먹이 어느 정도 센가를 확인해보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최근엔 대신 매를 맞지 않았지만 매타작을 하고 매타작 당한 사람에게 거액의 매타작값을 준 고약한 사건이 발생했다. 물류업체 전 대표인 모 재벌가 2세 C씨가 고용승계 문제로 마찰을 빚은 탱크로리 기사를 알루미늄 야구방방이로 마구 때린 뒤 ‘매값’이라며 1천만원짜리 수표 2장을 주었다고 한다. C씨도 나름대로 할말이 없지 않겠지만 사람을 폭행하고 돈으로 달래려는 듯 거금을 던져 주었다면 ‘돈이면 다’라는 극에 달한 재벌가 2세의 도덕적 불감증이 놀랍다. 부하 직원들이 빙 둘러서 있는 한가운데서 조직폭력배 두목이 폭력으로 분풀이 하는 영화 속 장면을 연출한 셈이다.
피해자가 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한다. 시정잡배와는 달리 재벌가 사람들의 처신은 달라야 한다. 사건을 일으키고도 변호사를 사 뒤처리를 맡기면 해결되는 전례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돈을 주면 때릴 수 있다는 재벌가 사람들의 ‘유전무죄’ 사고방식을 법이 바로잡아야 한다. 돈 없는 사람은 이래저래 서러운 세상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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