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뿌리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기자페이지

‘신토불이(身土不二)’는 1989년 농협중앙회가 대대적으로 벌인 ‘우리 농산물 애용운동’을 통해 대중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은 말이다. 하지만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이 펴낸 ‘사쿠라 훈민정음’의 주장에 따르면 이 말은 1907년 일본 육군 식양회가 먼저 사용했다. 식사를 통해 건강을 지키자는 취지에서 만든 이 단체는 자기 고장의 식품을 먹으면 몸에 좋고 남의 고장 것은 나쁘다는 것을 말할 때 ‘신토불이’를 썼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성적 평가의 척도였던 ‘수·우·미·양·가’ 등급이 일본 전국시대 때 자신이 베어 온 적의 머릿수를 세는 단위에서 유래됐다는 얘기도 황당하다.

 

국어사전에서 뜻풀이를 할 때 일본어 표시가 안 돼 있는 경우가 많아, 우리말에서 일본어 찌꺼기를 걸러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예컨대 한 코미디 프로그램의 이름이기도 한 ‘달인’은 일본식 표현이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달인을 대체할 토종 표현은 고사하고 일본에서 온 말이라는 표식도 없다. 일본말로는 마음이 개운한 모양을 뜻하는 ‘사바사바’가 우리나라에선 뒷거래를 통해 떳떳하지 못하게 은밀히 조작되는 짓을 의미한다. 현재까진 속세를 뜻하는 불교 용어 ‘사바’에서 유래했다는 측과, 자신의 밥을 덜어서 새에게 주는 일어 ‘산바’에서 유래한다는 해석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이윤옥 소장은 일어로 고등어를 뜻하는 ‘사바’라는 단어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일본에선 얕은 속임수를 쓸 때 ‘고등어 수를 센다’고 표현하는데 거기서 ‘사바사바’가 오지 않았겠느냐고 한다.

 

‘사바사바’를 ‘숙덕공론’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하지만 ‘숙덕공론’으로 ‘사바사바’의 느낌을 전하긴 어렵다. 문제는 언어의 발음에서 오는 느낌, 그동안 언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면서 굳어진 인식 등 그 단어 특유의 분위기를 순 우리말이나 한자어로 그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말 중에 어차피 70%가 한자말인데, 일본에서 쓰인 한자든 원래 쓰든 한자든 무슨 차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그러나 이씨, 김씨라도 호적을 알고 보면 본이 다르고 파가 다르듯, 원래 우리가 쓰던 한자말과 일제 식민지 시대에 침투된 말 사이엔 민족적 정서상으로도 큰 차이가 난다. ‘말의 뿌리’를 찾는 언어학자들의 보다 깊은 연구가 기대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