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전’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기자페이지

‘별주부전’ ‘토생원전’이라고도 불리는 ‘토끼전’은 한국의 구전 소설이다. 본래 구전되던 것이 조선 후기에 기록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한다. 필사본, 목판본의 이본(異本)이 다수 존재하며, 판본에 따라 결말이나 내용이 다르다. 판소리 ‘수궁가’의 원 작품이고, 개화기 소설 ‘토의 간’이 이 소설로부터 창작됐다고 한다. ‘토끼전’은 오늘날 현실을 반영했다고 봐도 괜찮다.

 

‘토끼전’은 용왕과 별주부(자라), 그리고 토끼가 펼치는 속고 속이는 이야기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그 속에 조선 후기의 모순된 현실과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우언적으로 그려져 있어 재미를 더한다. 토끼는 힘센 동물이나 인간으로 표상되는 지배계층의 핍박을 받으면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일테면 민초(民草)다. 별주부는 이런 토끼에게 수궁(水宮)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며 유혹한다. 별주부의 유혹에 빠진 토끼는 수궁이 자신의 고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꿈의 공간으로 믿고 수궁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직접 가서 본 수궁은 자신이 갈망하던 그러한 세계가 아니다. 육지보다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임을 간파한다.

 

토끼는 용왕의 간(肝) 요구를 지혜롭게 거부하고 더 나아가 용왕을 철저하게 조롱하여 희화화시킨다. 토끼는 체험을 통해 용왕과 수궁의 본질을 꿰뚫고 새로운 인식을 정립한다.

 

별주부는 수궁 지배층의 일원이지만 다른 부류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육지에 나가 토끼 간을 구해오라는 용왕의 명령에 대해 모든 신하는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머뭇거린다. 이때 별주부는 말석에서 기어나와 목숨을 건 육지행을 자청한다. 별주부의 목숨을 건 자원에는 자신의 한미(寒微)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계산이 깔려있음직도 하다. 하여간 별주부의 자원은 육지행을 꺼리는 다른 신하들과 대비되는 의지를 보여준다. 토끼를 놓친 후에도 자신의 충성이 부족함을 원망하며 용왕과 사직의 미래를 걱정하는 대목에서 그러하다.

 

2011년 신묘년(辛卯年)의 정황이 아무래도 ‘토끼전’ 내용과 비슷하겠다. 수궁에서 호사를 누리는 다른 별주부들의 호가호위(狐假虎威)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토생원’들의 건재를 빈다.  임병호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