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전’의 문학성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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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백구선견주부(龍伯求仙遣主簿) 용왕이 약 구한다 별주부를 보내려고 /수정궁벽조린부(水晶宮闢朝鱗部) 수정궁에 물고기 모여 회의를 한다 / 월중도약토신령(月中搗藥兎神靈) 달에서 약 찧는 신령스런 토끼를 / 저사릉파규한토(底事凌波窺旱土) / 어찌하여 업신여겨 육지 엿봤나”

 

19세기 중엽에 이유원이 남긴 ‘관극팔령팔수(觀劇八令八首)’ 중 하나다. ‘토끼전’의 판소리 ‘수궁가’를 듣고 그 감상을 남긴 시다. 이유원은 토끼를 신령스런 동물로 평가하고 토끼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우호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병든 용왕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어족회의(魚族會議) 자체가 매우 헛되고 어리석은 것임을 풍자적으로 강조했다.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에 들어 있는 기록은 이유원과는 평가가 상반됐다.

 

“동해파신현개사(東海波臣玄介使) 동해의 자라가 사신이 되어 / 일심위주방령단(一心爲主訪靈丹) 임금 위한 충성으로 약 구해 나섰네 / 생증결구편요설(生憎缺口偏饒舌) / 얄미운 토끼는 요설을 펴서 / 우롱용왕출납간(愚弄龍王出納肝) 간 두고 왔다고 용왕을 우롱하네.” 이유원의 시와 내용은 비슷하지만 드러내고 있는 시각은 상반적이다. 송만재는 자라의 충(忠)을 부각시키면서 토끼의 지략을 ‘요설’이라고 깎아내리고 ‘용왕을 우롱한다’고 비판하였다.

 

현전(現傳) 이본(異本)만 120여 종에 이르는 ‘토끼전’은 일제 강점기 판소리가 전래동화로 개작될 대 ‘심청전’과 함께 제일 먼저 전래동화화됐다. 거기서 강조된 것은 별주부(자라)의 ‘충성’과 토공(토끼)의 ‘지혜’였다. 이와 함께 토끼와 별주부의 대립은 혁신적인 이념과 보수적인 이념의 충돌이라고까지 문학적인 논리가 전개됐다. 이유원과 송만재의 관극시(觀劇詩) 두 편이 대표적인 예다.

 

‘토끼전’은 풍자와 더불어 해학이 넘쳐난다. 어족회의에서 중신들은 한결같이 무능력자 일색이었으며 급기야 용왕에 의해 ‘밥반찬거리’와 술안주거리’로 희화화된다. 용왕 또한 자신을 포함한 조정을 ‘칠패 저잣거리’로 비유해 웃음거리로 만든다. 봉건국가의 통치 질서를 정면에서 비판하는 날카로운 풍자의식으로 하층민들에게 흥겨운 분위기를 만끽시켜 준다. 어제 동물원에서 호랑이 등에 앉아 있는 토끼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다가오는 신묘년이 의미심장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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