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선생 삶·문학의 향기 ‘물씬

양평소나기마을, 문화 관광 명소로 인기

덥다. 시원한 소나기 세례라도 받았으면 딱 좋을만큼 연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의 어느날, 수원을 출발해 양평으로 향하는 길은 지열만으로도 후끈했다.

 

양평엔 바로 그 시원한 소나기 한 줄기를 테마로 지어진 황순원문학촌(소나기마을)이 있다.

 

휴가시즌을 맞아서인지 도로를 꽉 메운 차들의 행렬을 따라 1시간여를 달렸을까. 청계터널을 지나 하남-팔당 방면으로 꺽어들어가니 눈 앞에 시원스런 북한강 물줄기가 펼쳐진다.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기 위해 차창을 내리고 물내음을 흠뻑 맞고 있는데, 어디선가 소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수상스키족들이 물살을 가르며 여름을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제대로 된 여름을 즐기는 이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잠시, 다시 호반을 따라 이어진 도로를 구불구불 드라이브 삼아 달리니 마을로 접어드는 흙길에서 먼지가 뽀얗게 올라온다. 왜가리가 논밭서 노닐고 아낙들이 땡볕서 이랑을 고르는 모습이 천상 농촌풍경이다.

 

소나기마을 표지판을 지나 주차를 하자, 한 눈에 들어오는 황순원문학관과 잔디정원을 둘러쳐 있는 산세가 아담하다. 시인, 화가 그리고 음악가들까지…. 예술쟁이란 예술쟁이들은 전부 양평에 모여든다는 소문의 진상이 바로 이 산세에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막연히 산세에 취해있을 때, 어디선가 왁자지껄 한 무더기의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문학촌을 견학오는 학생들은  일일 평균 200여명 정도. 단체관람이 아니면 교통이 불편한 양평의 지리상 학생들이 문학촌의 단골손님이다.

 

잠시 후, 삼삼오오 모여있는 학생들 머리 위로 쏴아 시원한 분수가 터진다. 분수처럼 연이어 터지는 소나기 세례는 10초가 될까말까. 아이들은 아쉽다는 듯 머리에 뭍은 물기를 털어내며 인솔교사와 함께 문학관으로 향했다.

 

“하루 1~2회 정도 터져요. 소나기 소설을 재연한 20여개의 수숫단 위에 분수볼을 설치해 소설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지요.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이벤트존이죠.”

 

문학관의 해설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박광희 문화해설사는 “시설관리하시는 분이 인수인계중이라 제대로 된 소나기 분수를 보여줄 수 없어 미안하다”며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커피를 마시며 문학관을 둘러보다 문학관 촌장으로 재직중인 김용성(인하대학교 인문학부 명예교수)씨를 만났다.

 

“선생님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지 다른 무엇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에 관해서는 소설 속에 다 들어있다네’라고 말할 정도로 작품속에 자신의 내재된 성품과 지조와 절개 그리고 사상을 응축해냈다”며 고(故) 황순원 선생이 20여년간 교수(경희대학교)로 재직했던 당시 대학원생 신분으로 선생과 연을 맺었던 그 때를 회고했다.

 

선생의 제자들이 지금은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뿌리를 박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하늘에서나마 칭찬할 것이라는 김 촌장은 문학촌은 단순히 황순원에 초점을 맞춘 관람시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고인의 문학작품 속 ‘소나기’, ‘목넘이마을의 개’ 등 소설의 현장감을 살릴 수 있도록 조성된 산교육의 장이라는 것.

 

그래서일까. 기실 문학촌 곳곳엔 입 딱 벌어지게 하는 화려한 시설물은 없다. 소설 소나기 속 소녀와 소년이 이야기를 나누던 징검다리를 재연해 놓은 개울과 산책로, 수숫단 모양의 대형 분수와 문학촌 한 가운데에 자리한 황순원문학관에서 고인의 육필 및 서책, 유품 등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유년시절 목욕탕 앞에서 엄마손에 이끌려 가다 마주친 동네 소녀앞에서 수줍게 얼굴을 붉히던 예전의 감성을 몇 십년을 훌쩍 넘겨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면 소나기마을이 제격이다.

 

문학촌 인근엔 호수를 둘러싸고 자리한 예쁜 팬션과 카페들이 즐비해 연인 또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하기에도 그만이다. 특히 조선말기 성리학자 이항로 선생 생가(양평군 서종면·031-770-2894), 용문산 사찰 중 으뜸인 용문사(양평군 용문면·031-770-2897), 물과 꽃들이 함께 피고지는 식물원인 세미원(양평군 양서면·031-775-1834), 곤충을 테마로 한 애벌레생태학교(양평군 양서면·031-771-0551), 북한강과 남한강이 서로 만나 절경을 이루는 두물머리(양평군 양서면·031-773-5101)를 둘러본다면 하루만으로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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