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어머니’

나는 가출길에 군대에 갔다. 취직은 고사하고 노동판 막일 자리도 차지하기 힘들 때, 집을 나가 고양군 신도면 어느 공사판에서 일을 했다. 한데, 일이 서툴러 먹고 자는 한바집 밥값 대기가 어려웠다. 일을 한 것만큼, 그러니까 요즘 말로 성과주의로 임금을 주는데, 그나마 장마가져 공치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들의 행방불명으로 애를 태우시던 어머니가 논산 제2훈련소에서 부친 나의 사복 소포를 받아보고 우신 것은 한참 뒤였다. 소식을 알게 된 것은 반가웠겠으나, 군대에간 자식의 옷 소포를 보는 모정은 또 달랐던 것 같다.

 

이런 모정을 몇십년 후 집사람에게서 보았다. 아내는 군대간 큰 애의 부대에서 보낸 사복 소포를 받아보더니,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난 전에 어머니가 우셨단 말씀을 듣기도 했지만, 아내의 모습이 숙연해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며칠전에는 며늘아이의 모정을 또 보았다. 대학을 갓 입학, 2학기를 휴학하고 입대한 손자의 옷 소포를 받아들더니 눈물을 주르륵 쏟는 것이다. 손자는 연평도 포격 추가 도발 우려로 오늘 전쟁날 지, 내일 전쟁날 지 모를무렵에 군대갔다.

 

아들을 군대보낸 모정 3대 얘길 했다. 어찌 이뿐이랴,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다 똑같다. 내가 군대에 간 것은 휴전되고 얼마 지나서다. 그 이전엔 6·25 전쟁 때 아들을 전쟁터 사지로 군대 보낸 모정이 있었다.

 

나는 며늘아이에게 “너도 대한민국의 어머니가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다. 군대간 아들의 옷 소포를 눈물로 얼룩지게 한 어머니야 말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어머니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는 앞으로도 이어진다.

 

어느 국회의원이 병역을 마치지 않은 사람은 장관이 될 수 없는 법안을 발의했다는 것 같다. 장관만이 아니다. 기왕이면 대통령도 그래야 한다. 하지만 병역기피가 아니고, 군대에 갈 몸이 아니어서 면제 됐으면 공민권을 제한하는 것은 옳다고 볼 수 없다. 문제는 군대에 안 간 것을 무슨 자랑으로 아는 도착된 가치관이다. 오히려 미안하게 생각해야 된다.

 

새해에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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