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상비약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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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들의 반발은 능히 예상된다. 약사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당장 대한약사회가 국민 안정성을 내세우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편의성만 강조하다 안전성을 놓칠 수 있다는 이유다. 약국은 약물 오·남용이나 불량약품 회수·교체 등을 책임지는 안전장치라는 논리다. 시민·의사단체는 국민 편의성을 강조하며 자율판매 허용에 찬성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2일 보건복지부 새해 업무보고 자리에서 “감기약, 미국은 슈퍼에서 파는데 유럽은 어떠냐? 자세히 아는 사람 없느냐”고 거론했대서가 아니다. 감기약, 반창고 같은 가정상비용 일반의약품을 슈퍼마켓 등에서 판매하는 것은 대세다.

 

우리나라는 ‘일반의약품’은 약사법에서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안전한 약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약을 분류할 때 먼저 일반의약품을 분류하고 나머지를 ‘전문의약품’이라고 한 것은 즉, 국민이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는 약을 먼저 분류하고 나머지는 의사의 처방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일반의약품의 경우 해열제·진통제 뿐만 아니라 비타민음료 하나도 마음대로 고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약사에게 증상을 말하거나 정확한 약 이름을 말해야 한다. 약사가 골라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전문의약품은 다르다.

 

지난달 말 대한개원의협회, 대한공중보건사협의회가 낸 성명서는 설득력이 있다. “일반의약품을 슈퍼마켓 편의점에서 팔게하라”는 내용으로 국민불편 해소를 내세웠다. 특히 약국이 문을 닫는 밤시간을 문제 삼았다. 약물 오·남용 문제는 국민의식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가장 큰 문제는 주무부처인 복지부다. 이 문제가 시민단체·의사, 약사의 밥그릇 싸움으로 번져 사회 갈등으로 확산될 것을 노심초사하는 것은 짐작하지만 여태껏 입장이 불분명하다. “국민 편의, 약물 오·남용 등 찬반 입장 모두 무시할 수 없다”며 “우선 해외 실태 분석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고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은 일반의약품을 편의점 등에서 자율판매하고 있다. 독일에는 인터넷약국도 있다. 최빈국인 아이티도 대형마트에서 해열제를 판다. 복지부가 이런 추세도 모르고 있다면 심히 곤란하다. 복지부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 찬반논쟁을 종식시켜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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