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 첫날인 11일,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업무 겸 만찬을 갖는 동안 배우자들은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만찬을 가졌다. 이날 미리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는 입구에서 G20 국가 퍼스트레이디와 국제기구 대표 배우자 등 30여 명을 영접했다. 만찬장은 사방에 커다란 현대미술그림이 내걸린 아담한 공간이다. 김 여사는 이날 이렇게 건배를 제의했다.
“한국은 인연을 소중히 여겨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는 오랜 친구들과 다시 만난 기분입니다. 한국과 여러분의 깊고 깊은 우호 관계가 오래 이어져 정상회의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원합니다.” 이어 배우자들은 “건강과 우정을 위하여”라는 김 여사의 건배사에,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부딪쳤다.
‘오바마(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 란 건배사가 화제였던 때여서 김윤옥 여사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건배사는 인상 깊었다. 그 ‘오바마‘를 ‘오직 바라는 대로, 마음 먹은 대로 이루어지길’이라고 풀이했다면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직을 잃진 않았을 터다. 술자리의 건배사로 ‘나가자(나라와 가정과 자신을 위하여)’, ‘진달래(진실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중한 만남을 위하여)’ 등이 있고,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모임에선 ‘9988’이 유행한다. 2008년 1월 당시 한덕수 총리가 중소기업인 신년 인사회에서 한 건배사다. “중소기업이 대한민국 기업의 99%, 전체 고용의 88%를 차지한다는 뜻이며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자는 의미”라는 그의 설명에 박수가 쏟아져 나왔음은 물론이다. 그럴 듯한 건배사가 많지만 얼마 전엔 ‘건배송’을 다 들었다. 수원시문화상수상자회 신년 하례식 장소였는데 지휘자 송태옥 선생의 제의에 따라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 산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 ‘아름다운 문화의 꽃 찾으러’ 간단다”라고 동요 ‘산토끼’를 불렀다.
신묘년 토끼해에 생각해낸 송 선생의 건배송이 동화적이었다. 누가 또 건배송을 제의할지 기다려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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