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조선조말 사법제도 도입 당시엔 판결문을 붓으로 썼다. 이어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후엔 펜으로 썼다. 붓글씨는 지금도 서예로 남아있다. 그러나 펜을 잉크에 묻혀 썼던 펜글씨는 일몰됐다.

 

펜글씨 판결문이던 것이 한글 타자기로 바뀐 것은 획기적 변화다. 한글 가로쓰기 판결문이 처음 나온 것도 1962년 한글 타자기 판결문이 나오면서부터다. 이젠 컴퓨터 자판 판결문이 보편화 된지 오래다.

 

판결문 글씨는 달라져도 내용이 어렵기는 매 한가지다. 대개의 경우, 재판 당사자가 법정에서 낭독하는 재판장의 판결문을 듣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질 못한다. 나중에 누가 보충 설명을 해줘야 알아 듣는다. 법률 용어가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판결문 자체를 어렵게 쓰기 때문이다.

 

복잡한 문장은 법원 판결문의 통상적 특징이다. 한 문장 속에 ‘~한바’ 등의 연결어미가 열번도 더 한 끝에 ‘~다’로 끝나기가 예사다. 문맥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곤 해 주문을 듣지 않고는 도대체가 유죄라는 것인지, 무죄라는 것인지 종잡기 어려울 때가 많다.

 

경찰 조서에 한문을 쓰던 시절이다. ‘右手拳(우수권)으로 被害者(피해자)의 顔面(안면)을 數次(수차)에 亘(긍)하여 强打(강타)해 地面(지면)에 轉倒(전도)시켜’ (오른쪽 주먹으로 피해자 얼굴을 수차례에 걸쳐 때려 땅에 넘어뜨려)라는 문체가 많았다. 지금은 경찰서 문서보관소에도 찾아볼 수 없는 조서다.

 

그런데 법원 판결문은 여전히 어렵다. 어려운 것이 권위가 아니다. 판결문을 알아듣기 쉽게 쓰는 것, 또한 법정의 민주화일 것이다.

 

판결문을 쓸데없이 어렵게 쓰거나 길게 엿가락 처럼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법원 내부 의견이 나온 것은 신선하다. 얼마전 법원도서관은 민형사 사건의 모범판결사례집을 펴내어 전국 법원에 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결하고 자연스런 구어체 판결문을 쓰도록 권장 했다는 것이다. 판사들은 한번쯤 읽어봄직 하다. 모처럼 펴낸 사례집을 읽지 않고, 외면하는 판사들이 없지 않을까 하여 걱정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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