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대들보를 추켜들면서 공손하게 선송(善頌)을 펴겠노라. / 대들보를 동쪽으로 밀어라. / 일자로 뻗은 봄뫼는 그림 같은데, 행전(行殿)은 언제나 보좌를 열었는가 의심하였더니 부상의 상서로운 빛은 새벽에 먼저 붉었네. / 대들보를 서쪽으로 밀어라. / 무지개 같은 저 다리 밖은 금제(金堤)를 호위하였는데, 사람마다 유도(留都)의 즐거움을 해설하는 듯 달 아래 생황 노래 만호에 어울리네. / 대들보를 남쪽으로 밀어라. / 교잠(喬岑)은 까마득하게 저무는 구름을 머금었는데, 우림군(羽林軍)의 천 기가 새해 아침에 조회하는 듯 푸른 잣나무는 아스라하게 이슬 아래 달(甘)겠구나. / 대들보를 북쪽으로 밀어라. / 푸른 나무 가운데를 넓은 길이 꿰뚫었는데, 그 위에 까마득하게 주필대가 솟아 있네. 봄바람 한 떨기에 정기빛이 어렸구나. / 대들보를 위로 밀어라. / 옥경의 一 二루를 멀리 바라보니 별 가운데 버들이고, 달 가운데 꽃이로다 / 하늘 위나 인간이나 한 모양으로 응하였네. / 대들보를 아래로 밀어라. / 편편한 논에 물은 희게 비치는데 논갈이 말이 떠있구나. / 때 맞추어 단비 오니 풍년을 점칠러라. 가을 뒤의 누른 구름 온 들에 가득하리. / 엎드리어 원하옵건대 상량한 뒤에 봄빛은 늙지 말고, 땅의 신령이 남몰래 보살피어 구슬 같은 이 땅 위에 만년토록 길이 울종한 가기(佳氣)를 띠시고, 금성 천리에 반석같이 태평한 큰 터를 드리우소서. 연푸른 버들과 고운 복숭아는 모두가 영춘(靈春)의 나무가 되고, 어린아이와 늙은 사람이 함께 강구연월에 태평을 즐기도록 좋은 운수가 무궁하게 뻗고, 태평한 기상이 언제까지 덮고 있도록 하소서.”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의 상량문 후반부다. 1997 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최근 ‘한국의 으뜸 8대 명소’로 선정된 수원 화성은 사대문을 비롯 각 시설물마다 상량문이 전해져 내려와 더욱 문화적 가치가 높다. 정조의 어명을 받아 명신들이 지은 상량문 또한 명문이다. 화성의 화려함은 7개 수문 위에 세워져 있는 화홍문(華虹門)과 어울린 방화수류정에 이르러 극치를 이룬다. 정조 18년(1794년) 건립된 이 방화수류정은 일명 ‘동북각루’인데 보물 1709호로 지정됐다. 상량문만 봐도 승경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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