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국회 행정안전위에서 공개토론이 생략된 채 상정 10분 만에 전광석화처럼 기습 통과된 정치자금법 개정안에 청와대가 7일 “적절치 않다”며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나서 급제동이 걸렸다. 이 법안은 국회의원이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기부받은 정치자금에 대해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희대의 악법이다. 사실상의 입법 로비 허용이라지만, 사실상의 금품 수뢰 허용법안이다. 더욱 괴이한 것은 청목회로부터 불법 기부를 받아 기소된 6명의 국회의원을 구제키 위한 소급 입법이란 점이다.
청와대가 국회 일에 언급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법안 처리는 국회 고유 권한”이라면서도 거부권 행사에 개입의 근거를 두고 있다. 청와대 측은 국회에서 통과돼도 거부권이 행사될 것이란 말을 공식적으로는 안 내놨어도 “정부 일각의 그런 의견이 있다”는 말로 국회를 압박했다.
청와대의 압박 배경은 이렇다. 정치자금법 개정에 따른 정부의 공포로 이를 비난하는 여론의 뭇매에 국회와 함께 덤터기 쓰기보다는 미리 막는 차별화가 민심을 얻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명분을 앞세운 국회 압박은 여당인 한나라당에 대한 문책 성격 또한 없지 않다. 또 국회에 대해 평소의 불편한 심기가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정부가 제출한 농협법 등 법률안은 몇 해씩 잠재우면서 국회의원의 집단이기법안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처리하는 데 대한 불쾌감이다.
어떻든 청와대 측의 압박으로 전날까지만 해도 3월 국회에서 처리 가닥을 잡아가던 여야 지도부가 엉거주춤 한발 물러섰다. “처리 시한을 3월 국회로 정한 바 없다”는 것은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말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처리 여건이 아직 조성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다 보니 법사위는 물론이고 본회의에서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고 정치자금법 개정을 서둔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만 풀 먹다 들킨 강아지꼴이 되어 머쓱해졌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저능아들이다. 민심의 뭇매를 맞을 줄 몰랐던가, 이에 기선을 제압한 청와대만 좋은 일 시켰다. 문제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폐기돼야 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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