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료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기자페이지

우리나라에는 월간, 계간, 반연간, 연간 등을 합쳐 약 300종의 문예지가 발행된다. 10여종이 발행되던 1950~60년대 땐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는 기회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동인지 형태도 많아서 문인들에게 비교적 넓은 지면이 제공된다.

 

작품을 발표한 문인에겐 당연히 소정의 원고료를 지불해야 도리인데 재정이 여의치 못한 문예지들은 대개 작품이 실린 책을 우송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래도 불만을 나타내는 문인들은 거의 없다. 저서를 발간하면 서로 증정하듯 오고 가는 인정처럼 일종의 묵계인 셈이다. 문예지는 원고료 안 들이고 책 내고, 문인들은 작품을 발표하는 일로 낙을 삼는다. 더러 파격적인 원고료를 지불하는 문예지가 있긴 있지만 그런 덴 발표할 기회가 적다.

 

예전엔 정부가 유력 문예지에 운영비 명목으로 원고료를 지원해 줘 문인들이 요긴하게 받아 쓴 적도 있었다. 시(詩)의 경우 보통 한 편당 10만원의 원고료를 받는데 차라리 안 받는 게 낫지 하는 문인들이 많다고 한다. 영혼을 기울여 쓴 작품 앞에서 자존심을 구기는 것 같기도 하고 면구스럽기도 해서 그렇단다.

 

한국경기시인협회는 계간으로 발행하는 시 전문지 ‘한국시학’의 원고료를 현금으로 송금치 않고 진로소주를 택배로 보낸다. 주식회사 진로는 한국경기시인협회를 후원하는 기업이란다. 시가로 따지면 얼마 안 되지만 소주를 원고료로 받은 문인들의 반응은 매우 좋은 것으로 회자된다. 한국문단에서 연치가 제일 높은 황금찬 선생 같은 원로시인, 목회를 하는 박이도·최호림 시인에게도 똑같이 소주를 보낸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유안진·김지향 시인 등 여성 문인들도 뜻밖의 원고료를 받고 기뻐했단다. 김송배·정성수·홍해리·김용오·유선 시인 등은 다른 술과 달리 아까워서 조금씩 반주로 마셨다고 전한다. 인터넷에 올려 ‘원고료=소주’란 소문이 문단에 널리 퍼졌다.

 

그런데 제주도의 문학단체 애월문학회(회장 김종호)는 문예지 ‘애월문학’ 필자들에게 원고료로 싱싱한 제주 특산 취나물을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주처럼 특별한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 소주나 취나물 등으로 대신하는 원고료를 받으면 기분이 매우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