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런하게 한쪽 방향을 향해 누운 물고기 비늘 중엔 거꾸로 박힌 비늘이 하나씩은 꼭 달려있다고 한다
역린(逆鱗), 유영의 반대쪽을 향하여 날을 세우는 비늘 하나
더러는 미끼를 향해 달려드는 눈먼 비늘들 사이에서 은빛 급브레이크를 걸기도 하였을까
역적의 수모를 감당하며 외롭게 반짝이기도 하였을까
제 몸을 거스르는 몸, 역린, 나도 어찌할 수 없는 내가 나를 펄떡이게 할 때가 있다
십년째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낙향 물고기 비늘 털며 사는 친구놈의 얘기다
정신과 몸이 황폐해져서 술로 세월을 살던 친구가 어느 날 제 몸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어린 딸아이를 보고 거짓말처럼 술을 끊었다. 逆鱗(역린)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타이르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친구의 몸에 붙은 그 작은 비늘 하나가 친구를 추스른 것이다. 이제 우리 헤어져야 해! 연인들 앞에 툭 떨어지는 눈물방울, 차마 돌아설 수 없게 만드는 역린이다. 거센 인생 항로에 문득문득 방향키를 잡아주는 역린, 급하게 달려가는 아이를 넘어뜨리는 돌부리 같은 역린, 천천히 가거라 방향을 잡아주고 브레이크를 살짝살짝 밟아주는 올바르고 침착한 정신 하나 누구든 하나씩은 박혀있다. 이덕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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