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꽃,
꽃은 열매 속에도 있다
단단한 씨앗들
뜨거움을 벗어버리려고
속을 밖으로
뒤집어쓰고 있다
내 마음 진창이라 캄캄했을 때
창문 깨고 투신하듯
내 맘을 네 속으로 까뒤집어 보인 때
꽃이다
뜨거움을 감출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속을 뒤집었다, 밖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은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꽃은
견딜 수 없는 구토(嘔吐)다
나는 꽃을 집어먹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캄캄하다. 뜨겁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누군가를 지독하게 사랑하거나 증오할 때, 꽃은 자폭한다. 꽃은 한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낱낱이 드러내고 죽는다. 꽃은 단 한 번 생의 오르가즘을 위해 폭발한다. 황홀한 죽음이다. 동시에 어둠과 빛의 자리바꿈이다. 안과 밖의 자리바꿈이다. 아 아 어둔 내 몸속에서 째깍째깍 돌아가는 생의 시한폭탄이여! 나는 이 캄캄하고 구역질나는 세상을 증오한다. 아니, 사랑한다. 그리하여 언젠가 나는 만개할 것이니, 나를 집어 먹으라. <이덕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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