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

딸들은 나이가 들자

 

하나 둘 그동안 쌓아둔 세월들을

 

방바닥에 와르르 쏟아 붓고

 

이민용 가방에 차곡차곡 담는다.

 

가만히 내려다보는 어미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질듯 아프고

 

아름답게 곱게 자라준 뜨거운 시간들이

 

억새풀처럼 힘없이 손 흔들며 안녕을 고한다.

 

 

사람은 때가 되면 보따리를 꼭 싸야 하나보다

 

나도 말없이 보따리 싸서 이곳에 삶의 뿌리를 내리듯

 

내 딸들은 한수 더 떠서 비행기를 탄다.

 

텅 빈 허공이 내 방바닥에 떨어져 떼굴떼굴

 

굴러다니고 자식들과 함께한 세월이

 

뽀얀 수증기 되더니

 

내 눈에서 한없이 흘러내린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듯

 

장롱 문을 열어보고 또 열어보고

 

내 손과 마음은 정전되듯

 

장작개비처럼 뻣뻣해지고

 

떠나버리고 난 뒷자리에는

 

꺼져버린 신호등마냥

 

차갑게 식은 내 사랑만 가득 남아 있다.

 

 

정인자

 

경남 남해 출생.

 

<문학 21> (수필) <문예비전> (시)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화성지부 5대 지부장 역임.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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