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외로움 뼛속까지 시린데 따뜻한 물 원없이 써봤으면…”

[현장속으로] 국가유공자 이건항씨 부부

세상과 단절된 3평 쪽방서

 

“올 겨울 또 어떻게 넘기나”

 

‘겨울이 두려운’ 고양시 선유동 비닐하우스촌

 

“따스한 방은 바라지도 않아. 따뜻한 물이라도 원없이 써봤으면…”

 

싸늘한 초겨울 날씨를 보인 26일 오전 9시께 고양시 덕양구 선유동 비닐하우스촌.

 

도심에서 1.3㎞ 정도 떨어진 비닐하우스 촌은 고층빌딩이 들어선 주변 도심과 철저히 단절, 마치 하나의 고립된 섬을 연상케 했다.

 

이 비닐하우스 촌에서 30여년을 보낸 국가유공자 이건항(84)·장순여(77) 노부부의 깊게 패인 주름살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이들 부부가 거주하는 곳은 이 할아버지가 30여년전 구입한 3평짜리 컨테이너에 보온덮게와 비닐하우스를 덧씌운 곳으로 세상과 단절된 노부부가 서로를 의지하는 유일한 공간이다.

 

노부부의 컨테이너 밖에는 얼어버린 지하수관과 고장 난 냉장고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하늘아래 이런 곳이 있나’라는 놀라움과 함께 비닐이 엉성하게 덮인 문을 열고 컨테이너에 들어서자 연탄가스와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오르자 바닥에선 냉기가 차올랐고 벽과 천장에선 찬바람까지 들이쳤다.

 

마루와 천장은 노부부가 판자를 주워다 만든 것으로 오랜 세월 바닥은 꺼지고 벽과 천장은 틈이 벌어져 보수가 시급하지만 노부부는 거동조차 어려워 손을 못대고 있었다.

 

마루를 지나 컨테이너로 들어서니 벽면에 ‘무공훈장증. 제9사단 28연대 이등중사 이건항’이라고 씌인 빛바랜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이 할아버지가 수십년 전 받은 훈장이다. 이 훈장으로 할아버지는 매달 18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그러나 노부부가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으로 이들은 주민센터에 기초생활수급비지원을 신청했지만 아들이 둘이 있어 거부당했다.

 

아들들은 이미 40년 전에 집을 떠났지만 부양의무자로 기록, 노부부의 사정을 더 어렵게만 했다.

 

장 할머니는 “60살 먹은 자식들도 지들 살기 힘드니까 못 오는 거겠죠. 어디서든 건강하게 잘 살기만 바랍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근에는 할아버지의 폐병과 할머니의 관절염이 더욱 심각해지면서 이들 노부부는 올 겨울나기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그나마 2주에 한번씩 김치와 쌀 10kg을 전달하는 고양시 적십자와 고양동주민센터의 지원이 이들 노부부에게는 구세주이며 바깥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다.

 

이 할아버지는 “매해 겨울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찬물로 빨래하고 설거지 하는 집사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젊은시절 국가에 헌신했지만 이제는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행정안전부가 국회 유정복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경기지역에는 이들 노부부처럼 쪽방이나 고시원,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이 7천922가구, 1만1천139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상열기자 sy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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