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자 1100만명의 학력민국 허울좋고 내용없는 학력타파
A군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B군도 그랬습니다. C군은 상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A군과 B군은 18살 고 3, C군은 19살 재수생입니다. 아이들의 품에는 약속이나 한 듯 ‘미안하다’는 메모가 들어 있었습니다.
경찰이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라고 합니다. 꼭 조사해야 알까요. 일면식도 없는 아이들이지만 우리 모두가 그 이유를 압니다. A, B군은 망쳐버린 수능성적이, C군은 밀려오는 수능공포가 그렇게 만든 겁니다. 아마도 허공을 휘젓던 그 순간에도 ‘수능에서 실패한 나는 이 사회를 떠납니다’라며 울부짖었을 겁니다.
이 아이들의 생각을 틀렸다고 할 수 없으니 그게 답답합니다. 학벌 사회가 맞거든요. 1등만 기억하는 사회 맞고요. 수능 실패의 대부분이 인생실패로 이어지는 사회 맞습니다.
며칠 전 대통령께서 ‘학력 차별 없는 사회’를 역설하셨습니다. “고졸자가 마음껏 꿈을 펼치고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 ‘학력차별 없는 사회’를 열어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류 대학교 출신이시라 찜찜하긴 했지만 그나마 화두라도 던져준 게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있고 딱 열흘째 되던 지난 10일. 새벽 6시에 C군이 뛰어내렸고 저녁에 B군이 뛰어내렸습니다. 대통령 말씀에 0.1%의 믿음만 가졌더라도 그러진 않았겠죠. 대통령의 말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한국의 학력사회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불행히도 그게 사실인데 어쩝니까.
얼마 전 언론에 ‘학력 시대는 끝났다’는 제목이 떴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얘깁니다. 고졸 관리직 100명을 공채했습니다. 신(新) 인사제도란 것도 소개됐습니다. 고졸자를 뽑아 4년간 양성교육을 시킨 뒤 대졸 사원 대우를 한다는 구상입니다. 여기에 500명의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고교 내신 1, 2 등급짜리 ‘똑똑한 아이들’이었답니다. 이걸 두고 혁신이라고 쓴 겁니다.
웃기는 얘기죠. 결국엔 대학과정을 흉내라도 내야 동등한 대우를 하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4년을 버텨내면 그때가서 대우해주겠다는 거 아닙니까. 군대 교육 4년으로 학사자격증을 주던 사관학교와 다를 게 없습니다. ‘중공업 사관학교’라고 표현하면 될듯싶습니다. 1, 2등급 아니면 못 가기도 마찬가지죠. 대기업들이 발표했다는 13% 추가 채용 계획 역시 내용 없기는 마찬가집니다.
흔히들 대한민국을 학력민국이라고 합니다. 2009년을 기준으로 통계청이 뽑은 자료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83%가 대학을 간답니다.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 2009년에 1천100만 명을 넘겼다고 합니다. 툭하면 OECD를 들먹이기에 한번 비교해봤습니다. 1위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두 배입니다.
대학생 많은 건 좋죠. 문제는 사람구실 해보려고 졸업장을 딴다는 겁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라는 데서 지난 4월에 대기업 인사담당자 150명에게 물었습니다. 56명이 ‘대졸과 고졸의 임금 격차가 학력사회의 출발’이라고 실토했답니다. 그때 조사된 대졸과 고졸의 초임 격차가 1.5배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는 임금과 직급의 격차는 말 할 것도 없고요.
이러니 대학 안 가고 배겨낼 재간이 있겠습니까. 망친 수능성적에 독하고 참담한 상상을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 이번이 내가 대학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다가온 경우다.” 스티브 잡스의 그 유명한 스탠퍼드대 연설의 한 토막입니다. 1천100만 명의 대학졸업생이 넘쳐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연설입니다. 여전히 입사서류에 대학 졸업장을 첨부시키는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연설입니다.
해남의 B군, 대전의 C군, 그리고 수원의 A군은 죽었습니다. ‘보릿고개’ 기사는 30년 전에 없어졌고 ‘연탄가스’ 기사는 20년 전에 없어졌는데 ‘수험생 자살’기사는 지금도 계속됩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옥상난간에 매달려 무섭다며 발버둥치고 있는데, 대한민국 학력사회는 여전히 그들의 손등을 잔인하게 짓밟고 있습니다.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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