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욱의 사진으로 보는 세계]
지난 11월 언론을 통해 매일 태국홍수에 관한 엄청난 뉴스가 쏟아져 나오는 시점에 필자는 용기를 내어 태국 방콕을 방문했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겨우 안심을 시키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방콕 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왠걸, 방콕은 예전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곳에 있는 동안에도 인터넷에 접속하면 태국은 일본의 쓰나미 만큼이나 끔찍한 자연재해로 보여지고 있었다. 물론 혼다, 니콘 등 외국계 대기업의 공단이 입주해 있는 아유타야지역의 피해때문에 피해액수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은 어떨까? 항상 그러했듯 태국인의 삶은 밝고 쾌활했다. 첫날 카오산 로드의 한 숙소에 짐을 풀고 홍수를 촬영하기 위해 배회했지만 미디어에서 보았던 ‘홍수에 잠겨 고통을 받고 있는 태국인이 있는 풍경’을 찾기 위해 아무리 걸어도 사진을 얻을 수 없었다. 그져 가게마다 새롭게 만들어진 홍수방지턱이 홍수를 증명할 뿐이었다. 홍수에 대한 우려때문에 관광객들의 수가 줄긴 했지만 길거리 어딜가나 외국인 관광객들이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한나절 이상을 걸어 다니고 나서야 차오프라야 강변의 한 시장 전체가 발목 조금 위까지 물에 잠겨 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각종 골동품, 기념품을 파는 가게 그리고 식당까지 거의 대부분 평소처럼 영업을 하고 있었다. 어떤 가게는 벌써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돼 있었다. 태국은 여전히 혹독하게 더웠고 뜨거운 햇살이 모든 생명들을 태울듯한 기세로 비추고 있었다. 출국전 예상과 달리 태연하게 태국인들은 자연이 행하는 일을 묵묵히 바라보며 오늘을 살고 있었다. 사실 물건을 사고 파는데, 식당을 영업하는데 물이 좀 차 있다고 해서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느끼는 분위기였다. 평소처럼 시장은 여전히 활기를 띄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떤 서양인 관광객들은 홍수에 잠긴 방콕 앞에서 웃으면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KFC에서 구입한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비닐봉지에 넣고 잔뜩 멋을 낸 여성은 물에 잠긴 길거리를 지나갔다.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해외 언론을 통해 태국은 여전히 엑소더스의 현장이었고 실제 현실과의 괴리감에 소름이 끼쳤다. 그들에겐 자연은 악마였고 인간의 적이었다.
갑자기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온 필자는 혹독한 더위 속에서 음료수만 쉴새 없이 들이켰다. 넘쳐나는 물과 홍수 그리고 뜨거운 태양. 이 것이 바로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대지를 살찌우고 풍요롭게 만들었던 그리고 결과적으로 인간들이 모여들어 문명을 잉태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얼마나 오만한가. 홍수는 재앙이 아니다. 고대로부터 대자연이 지구의 생명력을 풍성하게 만들며 반복해왔던 위대한 일의 하나일 뿐이다. 홍수 이후에 땅의 생명체들은 더 커다란 생의 충만함에 빠져든다. 그 충만함 속에 스스로 뛰어들어 살았던 어리석은 인간이 이제 자연을 다스리려 하고 있다. 자연이 인류의 탄생 이전부터 해왔던 일을 못하게 막으려 하고 있다. 하루는 택시를 대절하여 아유타야지방을 방문했다. 위대한 아유타야 문명의 유적지는 물이 완전히 빠져 불상의 얼굴엔 다시 인자한 미소가 가득했다. 조상의 지혜로 자연과 인간이 서로 이렇게 양보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반면 인간이 살지 않았던 텅빈 지평선 위에 세워진 최첨단의 아유타야 공단은 물에 잠겨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였다. 너무나 대조적인 풍경이다. 절대 인간은 자연을 다스릴 수 없다. 자연이 하는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강제욱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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