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수원역서 겨울나는 ‘조선족 노숙자’
영하 5도의 날씨로 올 들어 가장 큰 추위가 들이닥친 지난 10일 밤 11시30분께 수원역사 인근.
인근 상점들마다 성탄절을 맞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환하게 비췄고, 주말 밤 열차를 타고 내리며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즐거운 시간을 보낸듯한 연인과 친구들은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화장실 옆 인적이 뜸한 길 한쪽에는 하룻밤 쉴 곳을 마련한 뒤 변변치 않은 안주에 소주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함께 앉아도 될까요”라는 말과 함께 기자라며 명함을 내밀자 그들은 사람이 그리운듯 손을 끌어 당겼다.
바닥이 시리니 깔고 앉으라며 종이박스를 건네 준 김모씨(50)는 4년 전 중국 연변 연길에서 왔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노부모와 부인, 딸과 함께 어렵게 살다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얘기에 2007년 한국행 배에 몸을 실었다.
김포의 한 재활용 회사에서 100만원 남짓의 돈을 벌며 중국으로 생활비를 보내던 김씨는 지난 7월 일하던 중 어깨를 심하게 다쳤다. 더이상 일하게 될 수 없던 김씨는 회사에서 쫓겨났고, 여러 곳을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수원역에 둥지(?)를 틀었다.
어깨 다치고 회사서 쫓겨나
“차비라도 있으면 고향 갈텐데”
소주 기울이며 화장실서 쪽잠
김씨는 “성탄절 준비를 하는 바깥 풍경을 보면 고향 생각이 더 난다”며 “차비라도 있으면 고향으로 갈 수 있을텐데..” 라며 눈물을 흘렸다. 무너진 ‘코리안 드림’의 소리없는 절규였다.
11일 새벽 1시30분께 한 할머니가 사람들 틈 사이로 신문과 박스를 힘겹게 줍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던 할머니가 향한 곳은 여자 화장실. 검정색의 보따리에서 주섬주섬 신문지를 꺼내든 할머니는 이내 한 곁에 신문지와 종이 박스 1개를 깔기 시작했다. 이내 누운 할머니의 베개는 신문지와 초코파이 3개가 들어있던 조그마한 검은 보따리였고, 이불은 여자 화장실의 두루마리 휴지였다.
“할머니 이불 덮으세요” 여름 이불이라 따뜻하지는 않을 거라며 내민 기자의 이불을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며 펼쳐 덮었다.
70세 박 할머니가 수원역 여자화장실에서 잠을 잔 것은 어언 3개월째. 딸이 하나 있지만 형편이 어려워 할머니를 돌봐줄 수 없는 상황이다. 자식에게 민폐 끼치는 게 싫어 노숙을 택했다는 할머니의 잠자리로 화장실 바닥은 너무나 차디찼다.
“조금 있다 딸이 데리러 오면 집에 갈거야”라고 되내이는 박씨 할머니가 여자 화장실에서 잠 든 그 시각, 밖은 여전히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정자연·신동민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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