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40 세대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이른바 ‘푸어(poor·빈곤)’ 꼬리표를 단 세대다. 번듯한 직장이 있고, 집도 있고, 교육도 받을 만큼 받은 그들은 스스로를 빈곤층이라 얘기한다.
푸어족(族)이 한자리에 모였다. 신도시에 중대형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지만 대출금 상환에 치여 용돈마저 없이 산다는 A씨. 그는 남편의 전문직이 무색하게도 자신을 ‘하우스 푸어(House Poor)’라 칭한다.
이를 듣던 쌍둥이 엄마 B씨가 ‘리빙 푸어(Living Poor)’란 말을 들어봤냐고 응수한다. 출산후 퇴사해 가계 소득이 절반으로 줄었는데, 육아에 갈수록 돈이 많이 들어 이제 시어머니 마이너스 통장까지 빌려쓰는 신세란다.
맞벌이라 부러움을 사는 C 씨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둘이 벌면 그만큼 써야 할 일이 더 많아진다’며 일을 해도해도 가난한 ‘워킹 푸어(Working Poor)’ 명함을 내민다. 이들의 대화를 묵묵히 듣던 D씨가 한마디 한다.
‘모두 집도 없고 돈도 없는 나같은 ‘하우스리스 푸어(Houseless Poor)’보다는 나은 줄 알아!’….
이렇듯 빈곤을 호소하는 푸어 세대는 그 범위가 넓어지면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내집을 갖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하우스 푸어’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산층으로 분류되지만, 집을 사기위해 대출을 받고 그 대출금을 갚느라 허덕이면서 생활 자체가 빈곤한 사람들이다.
전국적으로 하우스 푸어는 108만4 천가구, 374만4천명으로 전체 가구수의 10.1%로 나타났다. 수도권 거주자 중에서는 17.2%가 하우스 푸어다.
또한 40대의 21.5%, 30대의 20.1%를 차지한다. 하우스 푸어는 빠져나가고 싶어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게 문제다. 부동산 침체가 지속되면서 집을 처분하고 싶어도 쉽지않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이라는 반갑지 않은 요인까지 그들을 괴롭힌다.
무엇보다 빈곤감이 가장 큰 건 집 없는 사람들이다. ‘하우스리스 푸어’는 현재 전세에 살고 있으면서 은행 빚은 빚대로 있고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빈곤층이다. 최근 전세금이 많이 올라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올려주면서 하우스리스 생활은 더욱 고달퍼졌다.
‘리빙 푸어’란 각종 빚 때문에 곤란을 겪는 계층을 일컫는다. 개인부채가 1천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향후 금리인상 추이에 따라 리빙 푸어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결혼 후 퇴사한 한 지인은 혼수때문에 썼던 마이너스 통장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못메우고 있다. 생활이 안정되면 상환할 줄 알았는데 출산과 육아로 이어지면서 남편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외식과 문화생활을 포기하고 악착같이 생활해도 통장 잔고는 늘 마이너스다.
쉬는 날 없이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워킹 푸어’라고 부른다. 열심히 일해도 저축하기가 빠듯한 근로빈곤층이다. 갑작스런 병이나, 불황에 따른 실직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곧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할수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마음을 졸여야 한다.
최근엔 ‘베이비 푸어(Baby Poor)’라는 말도 생겼다.
자녀를 낳으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가정이다. 늦은 취업으로 더 늦은 결혼을 하고 전세값,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맞벌이로 지탱하던 가계는 출산으로 반토막이 난다.
이외에도 결혼을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고 그로 인해 빈곤해지는 ‘허니문 푸어’와 남부럽지 않은 스펙(자격증·경력)이 있어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스펙 푸어’, 한 평생 일하고도 가난한 노후생활을 하는 ‘실버 푸어’까지 새로운 빈곤층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빈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하우스 푸어이기 때문에 워킹 푸어가 되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실버 푸어의 길로 들어서는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푸어족은 신조어라고 치부하기엔 꽤 심각한 사회 현상이다. 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내 이야기, 동료·친구의 이야기다. 2040세대들의 불만이 극에 달할 수 밖에 없는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2012년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새해엔 모두가 희망을 노래한다. 푸어족들도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긴 마찬가지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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