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이웃돕기가 위기다. 11월 말까지의 모금실적이 177억 원이다. 지난해보다 5억 원이 줄었고, 2009년보다는 24억 원이나 줄었다. 12월부터 시작된 연말연시 모금도 형편이 다르지 않다.
경기도모금회가 정한 연말연시 모금 목표는 110억 원. 목표 기간의 절반이 지난 28일 현재 달성률은 43.8%다. 전국 평균 71.3%에 턱없이 부족하다.
공동모금은 자선사업이 아니다. 행정복지의 또 다른 축인 사회복지다. 노인이며 아동·청소년, 장애인, 여성·다문화, 지역사회 등 연관되지 않은 곳이 없다.
재해로 생기는 이재민을 돕는 사업도 이 돈에서 써야 한다. 그러니 모금 실적이 저조하다는 것은 복지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도민이 누려야 할 복지의 양이 그만큼 주는 것이다.
사정이 이쯤 되면 비상이 걸릴 곳은 경기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대표자의 모습이 없다.
최신원 회장은 지난 8월 취임하며 이런 말을 했다. “나눔문화의 새 바람을 일으키겠다”. 모금회에 대한 도민의 실망이 컸던 만큼 이 약속에 모아진 기대도 컸다. 더구나 그 스스로 나눔을 실천해온 인생이다.
축구인 홍명보와 함께 개인 기부 10억 원 이상을 뜻하는 ‘슈퍼 리치 클럽’에 오른 장본인이다. 모두가 더 없는 적격자라며 반겼다.
위기에 빠진 경기도 성금모금
최신원체제에 대한 그런 기대는 불과 넉 달 만에 실망으로 바뀌었다.
연말 성금의 중심 역할은 시군이 다. 31개 시군에서 모금된 돈이 모금회로 전달된다. 공직자와 시민들이 모은 정성이고, 이 뜻을 전달하는 대표자가 시장군수다. 말 그대로 1천100만 도민의 온정 릴레이다.
그런데 그 현장에서 모금회 회장이 사라졌다. 최 회장이 보낸 대리인이 사진 찍고 인사말하고 다 한다. 지금까지 20여 시군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최 회장은 단 한 곳에도 가지 않았다.
바쁜 일정 때문이라는 이유도 들리고, 비상근이니 굳이 참석할 필요가 있느냐는 해명도 들린다. 대기업의 경영인(SKC 대표이사 회장)이고 보니 그럴 수도 있다 치자. 그런데 이런 설명과는 아귀가 맞지 않는 데가 있다.
지난 22일 여주에서 있었던 ‘행복나눔 연탄배달’. 여기에는 털모자에 장갑을 낀 최 회장이 있었다. 한파가 몰아친 25일에도 최 회장은 파주까지 갔다.
‘행복나눔 김장행사’에서 직접 김치속을 버무려 넣었다. 그런데 최 회장이 참석했던 두 행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SKC가 주관한 행사다.
그가 대표이사 회장으로 있는 회사다. 본의든 아니든 오해받기 딱이다. ‘본인 회사가 하는 행사만 가고, 다른 곳에는 가지 않는다’.
헷갈리는 행보는 또 있다. 그가 취임한 이후 ‘경기 아너소사이어티클럽’이 창단됐다. 1억 원 이상을 기부한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이다.
여기 회원은 기업가, 병원장, 호텔 대표 등 대여섯 명이다. 최 회장도 회원이다. 사적 성격이었던 이 모임이 정식 클럽으로 창단됐다.
이해 안 가는 행사참여 기준
최 회장은 이 클럽 창단식에 직접 참석했고 1억 원을 기부하는 성의까지 보였다. 그런데 하필 그때가 시군에서 ‘회장 얼굴 보기 힘들다’며 아우성이던 이달 중순이다. 도민들이 뭐라 하겠나.
다들 최 회장을 기업계 기부천사라 부른다. 맞다. 그를 빼놓고는 기부를 얘기할 수 없다. 하지만, 그건 개인기부자 최신원의 모습이다. 기부기관의 대표로서의 모습은 다르다.
한 곳이라도 더 가려고 노력해야 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 회사보다는 남의 회사 봉사현장이 우선돼야 하고, 고액기부자 대여섯 명보다는 작은 정성 수십만 명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게 1천100만 도민의 대표봉사자다.
그런데 지금 최 회장은 없어도 되는 곳엔 있고, 있어야 하는 곳엔 없다.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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