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기념회는 정치인 돈줄인가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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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섭 칼럼]

결혼식 청첩장처럼 뿌려대는 출판기념회 초대장이 수시로 날라온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도 하루가 멀다하고 울려댄다. 4월11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출판기념회가 줄을 잇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 295명 가운데 지난해 가을부터 선거법 제한을 받는 오는 10일 이전까지 출판기념회를 연 사람은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여기에 원내 복귀를 노리는 전직 의원, 중앙정치를 해보겠다며 말을 갈아타는 도의원, 정치에 입문하려는 거물급 인사에서 신인들까지 합치면 수많은 사람들이 출판기념행사를 벌인다는 얘기다.

 

출판기념회가 봇물을 이루는 것은 총선을 앞두고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이다. 선거일 90일 이전에는 서울이나 해당 지역에서 언제든지 출판기념회를 열어 총선용 실탄을 무한대로 확보할 수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는 위기에 빠진 정당정치를 보여주듯 여야 의원들의 정치후원금 농사가 흉작이었다. 쪼개기 후원금 논란을 일으킨 청목회의 입법로비 의혹사건 처리가 마무리 됐는데도 여파가 이어진데다 경기침체와 정치불신도 복합적으로 작용해 소액 후원의 손길이 끊어진 것이다.

정치자금법 제한 안받아

이에 후원금 부족분을 만회하기 위해 출판기념회가 급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출판기념회에서 모금한 돈은 정치자금법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금액 한도와 모금 액수, 출판기념회 횟수에도 제한이 없으며 모금액에 대한 영수증 처리도 필요없다.

 

국회의원들이 책 판매의 대가로 정가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돈 봉투를 직접 받으면 현행법 위반이다. 하지만 불법적으로 보이는 출판기념회가 합법적인 이유는 이를 국회의원이 아닌 출판사가 주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출판기념회를 연 한 의원은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법을 피해가는 법의 사각지대”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출판기념회에서 걷힌 수익금 대부분이 고스란히 의원에게 전달되는 것도 관례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책은 대부분 기획출판을 한다. 하지만 정가 1만~2만원짜리 책을 10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받으면서도 내용은 거의 형편없다.

 

정치인으로서 철학과 사상, 의정활동 등을 담은 깊이 있는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책은 보고서 짜깁기나 홈페이지 베끼기, 신변잡기, 취미생활 등을 담은 잡서 수준이다. 본인이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뢰해 펴내는 책에 정치인의 철학이나 비전이 들어있을리 만무하다.

모금액 투명하게 공개해야

애당초 읽으라고 펴내는 책이 아니라는 얘기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는 사람 역시 왔다갔음을 알리는 게 목적일 뿐, 책에는 별 관심도 없다. 방명록과 대조되는 ‘돈봉투’에 주인공이어야 할 ‘책’은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현행법상으로 국회의원은 연간 1억5천만원을 후원금으로 받을 수 있고, 선거가 있는 해엔 3억원까지 가능하다. 이들이 선거에서 공천을 받거나 출마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개중에는 고의적으로 돈만 챙기는 부류도 있다.

그런 정치인들이 책장사로 돈을 끌어모으는 건 개인 치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거물급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2억~3억원씩 자금을 거둬들이고 있지만 관계기관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런 자금은 총선에서 불법 선거자금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다.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모금 행사로 변질되고 있음에도 국회는 이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기는 커녕 책 이외에 다른 행태의 모금 행사도 허용하자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여야 의원 15명은 서화전과 바자회도 출판기념회처럼 금품을 모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물품도 책처럼 판매할 수 있게 허용하자는 것이다. 무슨 코미디같은 법률 개정안인지….

 

정치인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법으로 규제하는 게 마땅하다. 당장 현역의원들부터 출판기념회를 통해 얼마를 모아 어떻게 썼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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