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대구·경북에서 민주당 참패, 호남에서 한나라당 참패!’. 4월11일 오후 6 시. 출구 조사를 끝낸 방송사들이 일제히 등장시킬 문구다. 누군가에겐 악담일 수 있지만 상식과 경험을 조합해 낸 엄연한 현실이다.
탄핵의 역풍이 휩쓸던 시절에도 열린우리당은 대구·경북에서 패했다. 열린우리당이 전멸하던 그때도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패했다. 이번이라고 달라질 건 없다. 정치학자들이 쏟아낼 해석도 뻔하다. ‘이번에도 텃밭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한나라당의 대구·경북, 민주당의 호남. 모두 텃밭이다. 많은 이들이 망국의 징조라며 걱정하는 지역주의다. 헌데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민주주의 꽃이라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50개 주 대부분이 전통적 지지층으로 쪼개져 있다. 공화당의 텃밭과 민주당의 텃밭이 확실히 나누어져 있다. 웬만해선 깨지지 않는다. 어림잡아 30개 주 이상이 이렇듯 특정 정당의 텃밭 노릇을 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정당이 바뀌는 주는 몇 안 된다.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미국은 물론 세계인의 시선이 모아지는 곳도 이런 지역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귀에도 익숙해진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아이오아, 네바다가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다. 위대해 보이는 미국의 민주주의도 결국엔 이 몇 개 지역에 의해 움직여져 왔다.
한국에서는 경기도가 그렇다. 모든 선거의 시계추다. 모든 정당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걸 아는 정당들이 선거 때만 되면 경기도로 몰려온다. 선거 전략의 최우선도 경기도다.
내로라하는 인재들을 투입하고 중앙당이 직접 공천을 챙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게 문제다. 경기도 정치 말살의 시작이다. 말이 좋아 인재영입이다. 따지고 보면 사람 내리꽂기고 낙하산 공천이다.
인재영입은 낙하산의 다른 말
성남 분당 을, 용인 처인, 용인 기흥, 안산 단원 갑, 군포, 부천 소사, 의왕·과천, 의정부 을. 특정정당의 인기가 높다는 곳이다. 여기에다 현역이 공석이거나 분구가 예정돼 있다는 매력까지 있다.
경쟁률이 최고 10대 1까지 치솟는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인재영입의 딱지를 달고 있는 외부 인사들이 판을 친다는 점이다. 지역 출신들이 하나같이 뒷순위로 밀려나 있다.
A지역을 보자. 후보만 10명이다. 이중 튄다 하는 인사 두세 명이 모두 외지출신이다. 지역과 상관없이 살아온 비례대표 의원에 중앙무대에서 얼굴이 알려진 방송인 출신이다. 저마다 자기가 ‘외부 영입 케이스’라며 침을 튀긴다.
대표적 난개발지역인 이곳엔 신·구 도심 간 갈등에 각종 규제까지 현안이 산더미다. 이걸 풀 적임자를 찾는 게 이번 선거다. 그런데 이런 현안과 관련된 과거의 어떤 기록에도 ‘그 사람들’의 흔적은 없다.
텃밭 버렸으면 정치도 버려야
단 한 명의 적임자도 없다면 모른다. 단 한 명의 인재도 없다면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지역민을 위해 봉사하고 삭발하고 땀 흘려온 지역정치인들이 즐비하다. 금배지만 달아주면 당장에라도 국회 잔디밭에 드러누울 사람들이다.
그럴만한 용기가 있고, 애향심이 있고, 기여를 해온 사람들이다. 당연히 검증의 맨 앞에 이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뒤바뀌었다. 따져 보지도 않고 외부인사 띄우기에 몰두하고 있다. 출판기념회마다 몰려다니며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A지역은 예일 뿐이다. 성남, 용인, 안산, 군포, 부천, 의왕, 의정부 지역구의 사정이 다 비슷하다. 여기서 흘러나오는 저마다의 인연이 기가 막힌다. ‘전임자와 동향이라서’ ‘과거 정치를 했던 곳이라서’ ‘처가의 고향이라서’ ‘앞으로 살 곳이라서’….
19대 총선을 앞두고 번지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텃밭 출마 포기→수도권 출마’. 대단한 공천개혁이라도 되는 양 추켜들 세운다. 잘못된 연결이다. 텃밭을 포기했으면 정치도 포기하는 게 개혁이다.
연고도 없고, 애정도 없고, 의욕도 없는 엉뚱한 지역에 밀고 들어가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공천 개악이고 정치 꼼수다. 지역구 정치는 지역 정치인에게 맡겨야 한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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