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말했다. “교도소 부지를 공원으로 묶어 버릴까.” 과장이 머뭇거린다. “그건 좀….” 시장이 다시 다그쳤다. “왜, 안돼? 저 좋은 녹지에 아파트가 들어서게 내버려둘 거야? 대책을 만들어봐”. “알았습니다”. 돌아서는 과장의 표정이 어둡다.
온통 관심은 교도소 부지였다. 교도소 재건축도 모자라 인근 녹지까지 파헤쳐 아파트를 짓게 한다는 거였다. 시민이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이 구상은 법무부의 거였다. 속사정이 있다. 교도소 재건축에 들어가는 예산이 수천억 원이다. 빠듯한 법무부 살림에 이를 절감하는 게 급선무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건설사와 주고받는 방식이다.
재건축을 건설사에 싸게 맡기고 그 건설사엔 인근 법무부 땅을 주는 거다. 교정시설의 신·증축이 대게 이랬다. 그러니 이 아파트의 건축 허가는 일반적인 그것과 달랐다. 법무부가 사활을 걸어야 하는 사업이었다. 시장이 버티는 것이 바로 이 아파트 사업이었다.
모임이 있은지 며칠 뒤. 시장의 인생을 바꾸는 불운한 일이 시작됐다. 법무부가 시에 내린 공문이다. ‘귀청 관내에서 진행 중인 ○○건설사의 사업진행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시기 바랍니다.
법무부 장관 ○○○’. 기자의 눈에 띄었다. 다음 날 사회면 머리기사로 대서특필됐다. 제목도 자극적이었다. ‘법무부, 교도소 부지 허가 관련 시에 압력행사 말썽’.
“야 큰 일 났다, 시장 수사하란다”
시장이 기자를 불렀다. ‘김 부장. 기사 잘 봤네. 우리 시의 어려운 점을 대변해줘서 고맙네. 그런데 혹시 우리 직원들이 다치지 않을까’. 그의 예감은 맞았다. 다만 대상만 틀렸다. 다칠 대상은 직원이 아니라 본인이었다.
신문 보도가 있었던 바로 그날 저녁. 법무부 장관실 소속 계장과 시장실 비서, 그리고 기자가 만났다. 계장이 급하게 불러 모은 자리였다. “야, 너희 시장 큰일 났다. 지금 법무부가 발칵 뒤집혔다. 당장 수사하라고 장관이 노발대발했다.”
기사를 본 장관이 크게 화를 냈고 시를 관할하는 검찰청에 수사착수 지시를 내렸다는 거였다. 시장 비서는 “시장님이 잡혀갈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잖아. 괜찮아”라고 태연해했다. 하지만 3명 모두 심상치 않은 상황이 오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한 달여가 지났을까. 검찰청 직원들이 시장실로 들이닥쳤다. 짧은 대화가 오갔고 시장이 연행됐다. 시장이 모 건설사로부터 수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 내용이 흘러나왔다.
시장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조사 이틀째 시장이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간단한 치료를 마치고 다시 검찰청으로 돌아가는 길에 메모지 한 장이 떨어졌다. 겉표지에는 ‘○○일보 김○○부장과 ○○방송 김○○기자에게 전해 주십쇼’라고 적혀 있었다.
시장은 구속됐고, 교도소는 섰다
‘김 부장, 검찰이 이상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내 얘기를 듣지 않아. 나를 구속하려고 미리 결정한 것 같다…’. 결국 그는 구속됐고 바로 그 교도소로 갔다.
이후 아파트 사업은 급물살을 탔다. 시장이 빠진 시청. 더 이상 제동을 걸고 나설 강심장은 없었다.
죄가 없다고 밝혀진 건 1년 반쯤 뒤다. ‘事必歸正’(사필귀정)이란 글씨가 새겨진 어깨띠를 두른 시장이 기자실을 찾았다. 향후 계획을 묻는 기자 질문에 “무죄를 받았다고 그동안 잃은 게 회복되지는 않는다”며 슬퍼했다. 실제로 그랬다. 무죄로 돌아왔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시장실의 주인은 ‘재판 중 피고인은 당선되더라도 시청에 못 들어갑니다. 찍지 마십쇼’를 외치던 사람의 차지가 됐다. 새소리 지저귀던 교도소 인근 녹지는 30층짜리 아파트 2천36세대로 뒤덮였다.
꼭 10년전, 그때는 그랬다. 법무부와 맞짱 뜨면 안 되는 시절이었다. 교도소 부지는 법무부가 결정하면 그걸로 끝이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 장관은 지금 변호사고, 그때 그 계장은 지금 검찰 수사관이고, 그때 그 기자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때 그 사람들 중 시장만 없다. 고인이 된 심재덕 전 수원시장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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