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 노인을 버리다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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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있고 가족도 있다. 거지가 아니다. 부천시가 폐지를 줍는 노인 66명을 조사했다. 43.9%가 전세에 살고, 30.0%는 월셋집에 살았다.

 

17%의 노인은 내 집도 갖고 있다. 대답하지 않은 8.8%를 모두 집 없는 노인이라 쳐도 90% 이상이 어엿한 거주지를 갖고 있다. 이런 노인들이 손수레 끌고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그래서 버는 돈이라야 입에 풀칠하기도 부족하다. 76%가 월 10만원 미만이다.

 

10만원에서 20만원, 20만원 이상이 각각 12%다. 최저생계비 53만2천584원엔 턱도 없다.

 

경쟁도 심해졌다. 80대에서 70대로, 다시 60대까지 내려왔다. 언제부턴가 여염집 주부들도 가세했다. 폐지가격이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다. 한때 1㎏에 300원 쳐줄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150원 받기도 빠듯하다. 이러다 보니 노인들끼리 치고받는 일이 빈발한다.

 

화곡동에 사는 이모(66) 할머니도 중상을 입었다. 폐지 때문에 싸우던 다른 할머니(83)에게 떠밀려 덤프트럭 밑으로 들어갔다. 이 참담한 소식에 지자체가 한 일은 달랑 야광조끼 나눠준 것이다. ‘폐지 줍지 않아도 될’ 근본 대책이 아니라 ‘안전하게 폐지 줍도록 하는’ 궁여지책이다.

 

이러고도 복지 천국이란다. 두 달여 남은 총선이 가히 복지전쟁이다. 재원마련 대책이나 효율적 분배 따윈 관심 없다. 무조건 퍼주기다. 서로 ‘우리를 찍어야 복지 천국이 된다’고 외쳐댄다. 한번 보자.

 

복지에 관한 한 민주통합당이 한발 앞서 간다. 초·중학생에게 친환경 무상급식을 시행하기로 했다. 만 5세 이하 보육비용을 전액 지원한다고 한다.

여야 공약, 젊은층에만 집중

 

군 복무자에게는 매달 30만 원의 사회복귀지원금을 주겠다고 한다. 대기업엔 청년고용의무할당제를 강제하기로 했다. 새누리당도 뒤지지 않는다.

 

초·중·고교생에게 아침 무상급식을 주겠다고 한다. 만 0세부터 5세까지 전면 무상보육을 시행하기로 했다. 만 5세 이하 전 계층 아동에게는 23만원씩 양육수당을 약속했다. 사병의 월급을 40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고교 과정은 전면 의무교육이다.

 

어디가 보수고 어디가 진보인지 구별이 안 된다. 하긴 굳이 애쓸 일도 아니다. 무상 급식, 무상 보육, 아동 수당, 사병 월급, 청년의무고용제라고 정리하면 다 들어간다.

 

이런 약속들의 수혜자가 기가 막힌다. 무상 급식 7세~18세, 무상 보육 0세~6세, 아동 수당 0세~5세, 사병월급인상 20세~23세, 청년 의무고용제 20세~30세다.

 

하나같이 30세 이하에게 맞춰진 복지다. 간접수혜층까지 보더라도 아동과 학생을 자녀로 둔 30, 40대까지다. 노인 분야는 모판 가르듯 잘려나갔다. 의료복지확대라고 구색은 갖췄지만 그건 말 그대로 확대다. 신규가 아니다.

이런 노인폄훼 선거판은 없었다

 

모두 젊은 표 때문이다. 젊은 표가 선거의 승패를 결정한다고 해서 이 난리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심하다. 과거 선거 때도 젊은 표는 중요했다. ‘젊은 층이 관건’이라는 분석이 빠졌던 선거는 없다.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4년 전의 18대 총선 공약만 봐도 그렇다. 노년기 관절염 치매 백내장 치료비 지원공약이 있었고, 기초노령연금 수급액을 8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리겠다고도 했다.

 

노인의 의치(틀니) 치료를 건강보험에 적용시키겠다는 약속도 있었다. 이번처럼 철저하게 노인층을 빼놓고 내달리진 않았다.

 

대체 무슨 벌을 받으려고 이러나. 17대 총선이 한창이던 2006년, 노인 폄훼 문제가 불거졌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들은 투표장에 나올 필요 없다’는 발언이었다.

 

정치인들이 들고일어났고 결국 정동영 의장을 직에서 끌어내렸다. 그때 그토록 ‘노인공경’을 외치던 그 사람들이 지금은 당을 대표하고 선거를 지휘한다. 그러면서 사상 유례없는 ‘노인 폄훼 선거판’을 만들어가고 있다.

 

‘노인 표는 영양가 없다’는 선거판, ‘젊은 층에만 올인하자’는 선거판. 이런 선거판을 기획하고 밀어붙이는게 바로 그 사람들이다.

 

2006년에는 노인 폄훼 발언을 한 정동영을 의장식에서 끌어내렸다. 노인 폄훼 선거판을 만들고 있는 2012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모두를 여의도에서 끄집어 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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