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회는 격론 끝에 지난 12일 밤 자정을 넘긴 시각에 대다수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줄 추가긴축안을 통과시켰다.
1천300억 유로 규모의 2차 구제금융을 받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마땅히 이를 반기고 즉각 구제금융을 주리라 기대하였던 EU집행부는 구제금융에 대한 최종판단을 유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인해 그리스 추가긴축안통과로 시장의 상승을 예상하던 기류는 또다시 꼬이기 시작하고 있다. 왜 EU집행부는 이러한 결정을 한 것일까?
사실 EU집행부의 이러한 결정 기저에는 그리스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스는 디폴트사태가 불거터진 2010년 이후 1차구제금융 1천100억유로를 받은 이래 EU집행부와의 긴축약속을 단 한차례도 이행하지 않았다. 즉, 자신들이 받을 돈을 챙기면서 자신들이 받을 고통은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스가 이같은 행동을 한 이면에는 설마 우리를 디폴트사태가 나도록 내버려 둘수 있겠는가 하는 배짱심리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즉, 그리스 디폴트가 에게해를 넘어 이태리및 스페인 등지로 확산될 것을 독일및 프랑스등 EU집행부가 가장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악용해 온 셈이다.
이러한 그리스의 셈법은 사실 매우 정확했다. 그 자체로만 본다면 유로권 경제의 3%도 채 되지 않는 그리스는 EU집행부에 별 중요성을 가지지 못한다.
문제는 그리스의 디폴트가 다른 거대경제국가로 확산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간 독일은 그리스를 위시한 유로경제위기의 해법으로 ECB(유로중앙은행)를 통한 통화공급 확대정책을 극력 반대해 왔었다.
그러다 드디어 작년 12월8일 LTRO(장기대출프로그램)를 승인, ECB가 무제한 통화공급에 나서자 비로소 유로경제위기는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간 독일이 통화공급 확대에 반대한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동일 통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통화증발을 통한 통화가치 하락은 결국 불량국가들로 인한 짐을 우량국가들이 같이 지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제위기 확대로 인해 초래될 비용이 나중에는 상상치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자 조기에 진화에 나선 것이다.
이처럼 유로중앙은행이 무제한 통화공급에 나선 이상 그리스가 설혹 디폴트가 나더라도 다른 국가로 사태가 확산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
이에 따라 유로집행부는 그리스에 대해 기존의 긴축약속을 지키라고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상황이 뒤바뀐 셈이다. 그리스로서는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구제금융을 받고 향후 20년 이상 장기간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차라리 디폴트로 가서 5년 정도 죽을 고생을 하고 드라크마(구 그리스통화)로 부활하는가,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는 셈이다.
하태형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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