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씨년스럽던 거리가 예술이 숨쉬는 거리로, 수원화성행궁 공방거리

전통문양과 어우러진 깔끔하고 개성있는 간판들이 발길을 잡는다. 나들이 나온 연인과 가족들은 아름다운 거리를 배경으로 추억을 담아내는라 여념이 없다. 수원화성행궁 공방거리 풍경이다. 몇 해전만해도 대부분 굳게 내려진 철문 셔터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던 화성행궁 가는 길이 예술벽화를 입고 아름다운 공방거리로 탈바꿈했다. 그 결과 이 거리는 화성행궁과 함께 수원시에서 가장 걷고 싶은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벽면이 허물어지면서 웅장한 수원성이 튀어 나온다. 광대들은 전기줄을 타며 아슬아슬한 광경을 자아낸다. 지난 21일 찾은 수원화성행궁 공방거리는 벽화 작업이 한창이었다.

벽과 작업은 예술가 집단 ABE(기획·총괄 이정원)가 맡고 있었다.

 

 

이정원 기획감독은 “이 거리는 1997년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유독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 많다”며 “낡은 건물의 벽면과 거리 바닥에 ‘트릭아트’를 활용해 재미와 함께 수원 화성과 행궁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 관광객들이 이 거리를 거닐며 현재와 과거의 공존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시가지 개발 등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걷던 이 거리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3년여 전부터 공방들이 하나 둘 둥지를 틀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서각공예를 하는 ‘나무아저씨’를 비롯해 칠보공예를 하는 ‘나녕공방’, 수묵화와 천연염색의 ‘은향공방’, 압화공예 ‘수수꽃다리’, 테디베어를 만드는 ‘손노리연구소’ 등 각양각색의 공방들이 닫혀 있는 점포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에 편승해 지난해 초 수원시는 ‘아름다운 행궁길 조성 계획’을 수립, 본격적인 공방거리 활성화 사업에 나섰다. 사업구간은 화성사업소에서 팔달산 입구까지 500여m로, 총사업비 4억여원을 투입해 공방·전통찻집·맛집 등 63개 업소에 대한 간판정비사업을 시작으로 외벽리모델링, 전시관 및 노천극장을 만드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사업은 처음부터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동안 잦은 공사로 영업에 피해를 입어온 상인들이 또 시에서 공사를 한다는 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 이때 나선 이들이 2년여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기 시작한 20여곳의 공방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스스로 민간단체인 ‘아름다운 행궁길’(회장 박영환)을 만들고, 이웃 주민들의 동의서를 받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녔다.

 

회원들의 노력 덕분에 몇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민들은 사업에 동의해 주었고, 이때부터 사업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그 성과는 당장 지난해 10월 열린 수원화성문화제에서 나타났다. 당시 공방거리는 관광객들이 몰려 서울 인사동 인파를 방불케 했다. 공예점과 맛집은 개점 이래 최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깨끗하게 단장된 거리에, 공방 앞에서 펼쳐진 ‘공예체험마당’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관광객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칠보공예 나녕공방 김난영씨는 “수원화성문화제 기간 평소의 10배 이상 팔았다”며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사람들도 그때부터 이 거리를 명소로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25일 오전 11시 공방거리에서는 그동안의 사업을 정리하고, 앞으로도 더 아름다운 공방거리를 만들어 가기 위한 ‘아름다운 행궁길 조성기념 개막행사’와 ‘화성행궁 맛촌 음식문화개선 시범거리 출범식’이 함께 열린다.

 

공방거리의 거의 모든 공방과 맛집들이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날만큼은 이 거리에 있는 모든 먹을거리와 즐길거리, 볼거리가 총출동한다.

 

‘박터트리기’와 ‘연날리기’, ‘제기차기’ 등 전통놀이가 펼쳐지고, 각종 밴드와 사물놀이패의 공연이 흥을 돋우며, 또한 각 공방들이 준비한 공예체험코너는 가족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김주홍 수원시 문화관광과장은 “공방거리가 인사동 같은 명물이 되면 행궁과 팔달문시장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화성 관광 동선을 확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연중 공예 및 예술 체험이 가능하도록 상설한마당을 마련해 공방거리가 화성관광 콘텐츠의 한 축으로 자리잡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박영환 아름다운 행궁길 회장 인터뷰

 

“노인들은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벤치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재즈음악이 깔리는 거리에는 젊은 예술가들의 판토마임 공연과 통기타 연주가 어우러지면서 연인들이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산책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화성행궁에서 팔달문 시장으로 이어지는 행궁길변에서 서각공방을 하고 있는 박영환씨(52·아름다운 행궁길 회장). 그는 이같이 말하면서도 마치 자기가 그 여유로운 노인이 된 것처럼 흐믓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3년전 박씨가 이곳에 공방을 차릴때만해도 냉랭한 아스팔트 거리에 공방이라고는 단 한 곳뿐이었다. 그의 이런 상상은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문화재보호구역에 포함돼 개발의 손길은 닿을 수 없게 됐고, 거리는 낡고 침체됐다.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싼 임대료 덕(?)에 지역 작가와 공예가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텅빈 점포를 개성있는 공간으로 바꿔나갔다.

 

“수원시에서 처음 이곳을 아름다운 행궁길 조성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했을 때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상인들은 달랐죠. 가뜩이나 숱한 공사로 피해를 봤었는데 또 공사라고 하니 반대가 심했죠.”

 

그래서 조직된 것이 공방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행궁길’이었다. 이때부터 박씨에게는 지난한 설득의 시간이 시작됐다.

 

“지금은 다들 좋아합니다. 오히려 당시 반대했던 주민들도 절 찾아와 다시 해주면 안되냐고 할 정도죠.”

다들 좋아하게 될 때까지는 박 회장의 역할이 컸다. 일일이 상점 주인의 의견을 물어 간판을 제작하도록 했으며, 간판 배경을 결정할 때는 사업자와 몇 차례나 실랑이를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방부목을 가져왔더라고요. 절대 안된다고 했죠. 환경오염도 문제지만 방부목은 1년만 지나면 낡아 버리거든요.”

그렇게 해서 최종 선택된 것이 고풍스런 느낌을 살린 ‘아트기와’였다.

 

박씨의 아름다운 공방거리 가꾸기는 올해도 계속된다. 이미 수원시 마을르네상스센터에 ‘공방거리 사람들 책자 발간 사업’과 경기문화재단에 ‘공방거리 포토존 조성 사업’을 제안한 상태다.

 

“문화재에 억눌려 살던 이곳이 이제는 문화재와 함께 아름답고 살기좋은 곳이 되고 있다”는 박 회장의 말처럼 행궁동 공방거리가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는 표본이 될 날이 멀지 않게 느껴진다.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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