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니스의 한 부부가 부모에 얹혀살고 있는 ‘캥거루족’ 아들을 집에서 내보내 달라고 법에 호소하고 나섰다.
이 부부의 아들은 41살이 되도록 독립하지 않고 노부모에게 온갖 수발을 들게하며 ‘기생’했다. 부모는 아들에게 독립할 것을 수차례 설득했으나 꿈쩍도 하지않자 참다못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이탈리아 소비자연맹 아디코(ADICO)에 법적 도움을 청했다.
아버지는 아디코 쪽의 변호사에게 “더이상 견딜 수 없다. 아내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고 한탄했다.
“아들이 번듯한 직업이 있으면서도 집에 들어앉아 부모에게 빨래와 다림질, 식사 준비까지 요구하며, 집에서 나갈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부모의 의뢰를 받은 안드레아 캄프 변호사는 이 아들에게 ‘엿새 안에 집을 떠나지 않으면 법적 조처를 취할 것’이란 내용의 경고 편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쉬었음’ 인구 200만명 넘어서
아디코 쪽은 장성한 자녀가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살면서 갈등을 빚는 사례가 접수된 것만 수백건에 이른다고 했다. 이번에 자녀 퇴거 요청을 한 부부도 최근 다른 부모가 법적 지원을 받아 자녀 축출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디코 쪽에 도움을 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한 보도 내용이다. 국내 여러 신문에도 실렸다.
‘캥거루족’ 때문에 힘겨워 하는 부모들의 한숨이 깊다. 캥거루족은 어미의 배에 붙어있는 주머니에서 6개월 내지 1년을 보내야만 독립할 수 있는 캥거루의 습성을 빗댄 말로,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경제적·정신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아니라, 취업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지않고 부모에게 빌붙어 사는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캥거루족의 등장은 심각한 경제난과 취업난, 늦은 결혼 등의 사회적 현상을 간접적으로 반영한다. 최근에는 결혼후 주거비 부담을 덜기위해 부모에게 얹혀 사는 ‘신 캥거루족’도 생겨났다.
캥거루족, 이제 주머니서 나와야
캥거루족은 ‘니트족’으로도 불린다.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은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한다.
보통 15~34세 사이의 취업인구 가운데 교육을 마친 뒤에도 진학이나 취직을 하지 않으면서 직업훈련도 받지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무업자(無業者)라고도 한다. 니트족은 청년실업이 심각해지면서 발생한 사회현상이다.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근로의욕을 상실한 청년실업자들이 니트족이 돼버린 것이다.
심신이 멀쩡한데 일도, 취업 준비도, 집안일도 하지않는 사람이 사상 처음으로 200만명을 넘어섰다. 통계청의 1월 고용 동향을 보면,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데 아무 것도 하지않고 ‘그냥 쉬었다’는 사람이 201만5천명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60세 이상 노령층(71만9천명)이 쉬는거야 그럴 수 있다 하겠지만, 한창 일할 젊은 청년들이 쉬는 것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대 ‘쉬었음’ 인구는 33만7천명으로 1년 전보다 27.3%(7만2천명) 증가했다. 지난 2010년 10월 이후 전년 동월 대비 15개월째 늘었다. 전체 20대 인구의 5.4%로 20대 스무명중 한명은 무위도식(無爲徒食)한다는 얘기다.
2003년 2.4%였던 20대 인구중 ‘쉬었음’ 비중은 2010년 3.3%, 지난해 4.2%를 거쳐 올해 5% 대로 높아졌다. 청년층 가운데 졸업 5년 후에도 니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비율은 36.8%로 OECD 국가중 최고 수준이다.
젊은 층의 ‘쉬었음’은 일자리를 찾는 의욕조차 잃었다는 의미다. 일하지 않고 교육·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니트족, 부모에 기대 사는 캥거루족이 늘어난다는 불길한 징조다. 경제활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사회가 병들고 있다는 신호다.
젊은이들이 놀고 있으면 경제활력 저하, 세수(稅收) 차질, 만혼에 따른 저출산 등 국가적 손실이 커진다. 더 많은 젊은이가 일자리를 포기한 채 무기력증에 빠지기 전에 정부와 기업, 학교, 가정이 적극 나서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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