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한 달 앞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최고의 이슈는 단연 여야를 불문하고 누가 공천되었느냐다. 여는 여대로 야는 야대로 혁신의 목소리가 높다. 정치인들은 정당의 공천권을 따기 위해 안간힘이고 공천위는 새 인물 찾기에 바쁘다. 국민의 눈이 무서운 게다. 민주주의의 힘은 국민의 표에서 나온다. 표를 얻지 못하는 정치인과 정당은 ‘대의정치(代議政治)’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떠들썩하고 밉상스럽지만 이런 야단법석이 싫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국민을 두려워한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가 성숙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런 진통을 수차례 더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터 정치의 민주화가 시작되었던 걸까?
이종구의 1988년 작품 ‘오지리에서’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그는 충남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서 출생했다. 출생의 근거지가 한 작가의 미학적 용수철이 되고 유리알이 된 사례는 많지 않은데, 그는 옹근 오지리에 몰두했다. ‘오지리에서’는 많은 오지리 연작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가 오지리에 집착한 것은 단지 오지리의 풍경이 아니라 온갖 부조리한 사회적 모순의 실체로서, 나아가 이 세계의 구조적 ‘세계화의 폭력’이 미치는 농촌의 현장으로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적 형식조차도 오지리에서 차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은 ‘오지리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오지리는 이 세계의 축소판이었던 셈이다.
1987년의 6.10 민주항쟁과 그로 인한 6·29선언은 국민이 정치의 전면에 나선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그 해 12월 온 국민은 대통령 선거를 위한 투표장에 나가 한 표를 행사했다. 작품 ‘오지리에서’는 그 이듬해 봄의 한 장면을 극사실 기법으로 그린 것이다. 후보들의 포스터가 찢긴 자리에 동네 어르신들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앉아있다. “약속을 꼭 지키겠습니다”가 화면 중앙에 있는데, 어르신들 발밑으로 “정부양곡”이 뒤집혔다.
1988년 용의 해에는 많은 것이 지켜지지 않았다. 올해 임술년에는 어떤 공약들이 남발할 것인가? 우리 모두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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