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담은 호치민의 정신
봄꽃이 늦다. 밀리지 않는 찬바람의 시샘이 얄밉다. 남쪽의 벚꽃축제는 꽃망울에서 터졌고 사람들은 빼앗긴 듯 봄이 그립다. 선거일을 고비로 봄바람이 온다니 기다려볼 일이다.
4·11총선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열아홉 번째 국회의원 선거다. 대한민국은 의회정치의 대의민주주의 국가이고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은 ‘대의’다. 대의가 바로 서지 않으면 국가는 황폐해진다. 대의가 없는 의회는 국가의 몰락이다. 국민은 황폐함과 몰락으로부터 국가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대의를 세워야만 한다. 반드시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다.
강형구 작가는 현대 초상화의 거장이라 할 만하다. 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중적 인물들을 그렸다.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이 그들이다. 붓을 쓰지 않고 스프레이와 지우개, 면봉 같은 소도구로 그린 그의 작품들은 우리의 옛 초상화의 본질과 닮아 있다. 얼굴에 그 인물의 정신을 담는 것.
2002년 작품 ‘호치민’은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 호치민을 그린 것이다. 그는 1890년에 태어나 1969년에 죽었다. 삶은 파란(波蘭)해서 만장(萬丈)이었다. 그 길은 오직 조국 베트남을 향해 존재했다. 1924년 6월, 그는 모스크바의 제5차 코민테른에서 아시아의 식민지 문제와 농민의 역할을 강조한 연설로 화제가 되었다. 1945년 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되었을 때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으며, 1968년 폐결핵에 걸려 죽음에 다다르자 “베트남 인민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웅장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는 유언장을 남겼다. 홀로 산 삶은 검박(儉朴)해서 숭고했다. 강형구는 그런 ‘호치민’의 정신을 얼굴에 담았다. 누가 이 얼굴에서 정치적 탐욕이나 거짓 허세 따위를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얼굴은 삶의 창이요 거울이다.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담기니까. 정치를 위해 나선 후보나 좋은 후보를 찾는 우리 모두 ‘대의’를 생각할 일이다. 말보다 먼저 정신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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