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 오윤의 ‘1960년. 가’

겨울이 길다고 봄 지나치는 법 없다. 겨울 달아난 자리에 기어이 움튼다. 어제의 봄이 오늘 봄과 같지 않다. 아지랑이 피우며 왔다가 철쭉에 숨어든 봄, 이제 없다. 매화, 동백,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모란이 올해는 한 날에 피었다. 웬 말인가? 불길한 징후? 곧 4·19혁명 52주년이다.

 

1960년 4·19는 징후의 중심으로 치달았던 참혹이었다. 부패권력은 독선과 야욕의 꽃 세상으로 유토피아를 선전했다. 늙은 대통령은 계룡산 정도령이었고 그의 신하는 아첨의 탐관오리였다.

 

12년 장기집권을 종신집권으로 꿈꿨던 그 해, 그들이 3·15선거에서 보여준 것은 ‘부정’의 악취였다. 반공개 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학생과 시민들은 야만에 몸서리쳤다.

 

오윤의 작품 ‘1960년. 가’는 그 모든 것들의 풍경이다. 그는 4월의 참혹과 몸서리를 그렸다. 잔인한 4월의 반역을 소리치고 싶었다. 총격과 강제진압, 고문과 공산당몰이 그리고 눈에 최루탄이 박혀 죽은 김주열의 주검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살려내야 했다.

 

200호의 작품에는 혁명적 투쟁으로 독재정권의 총칼에 맞섰던 학생과 시민들의 고난, 죽음, 절망 등의 몸짓이 멕시코 혁명벽화의 회화미학으로 재현됐다. 고구려 벽화의 다시점(多視點) 몽타주로 10여개의 시선과 장면이 사건화됐다. 1969년 ‘현실동인전’의 이 작품은 유일한 4·19역사기록화다.

 

오윤은 참혹의 실체를 물었다. 탄식과 분노, 절망과 저항이 한데 섞인 이유다. 순리를 거역한 인간의 오만은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과 우주를 위협하듯이 피의 권력은 희생을 남겼다. 이듬해 5·16군사쿠데타는 더 강력한 위협의 등장이었다.

 

20세기 도시문명의 과학적 스펙터클로부터 ‘활인(活人:사람 살림)’의 세상을 염원했던 오윤.

역사는 흘러서 어느덧 반세기가 지났으나 지구의 봄, 인류의 봄은 갈수록 멀다. 그러니 조금씩,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새봄을 불러야 한다. 꽃이 한날에 피지 않도록.

 

김종길 미술평론가ㆍ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