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일본 정부는 무너져가는 산부인과를 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가 산모에게 30만여엔의 출산 지원금을 주면, 산모는 그 돈의 일부를 떼어 분만사고 보상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한다. 출산 과정에서 신생아에게 뇌성마비가 발생한 경우에도 3천만엔의 보상금을 공적기금에서 지급한다. 산부인과 병원들이 분만에 따른 의료분쟁에 휘둘리지 말고 분만실을 계속 운영토록 하기 위한 조처다. 미숙아 출산도 정부가 치료비를 지원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산부인과 지망 의대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한다. 이들은 산부인과 의사가 되고 나서 의무적으로 일정기간 해당지역 분만 병원에 종사해야 한다. 그럼에도 산부인과 지원자가 많지 않자, 외국에서 전문의를 수입하는 지자체들도 생겼다.
수년 전부터 출산 인프라 붕괴 위기를 맞은 일본의 모습이다. 우리나라도 산부인과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전문의 급감에 분만실 폐쇄, 야간 응급수술 포기 등이 이어지면서, 산부인과에 아기 울음소리 대신 의사들의 한숨 소리가 커졌다.
전문의·병원 줄어 출산 인프라 위기
무엇보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크게 줄었다. 2004년 263명이던 신규 배출 산부인과 전문의는 올해 90명으로 줄었다. 남자는 10명뿐이다. 젊은 여성들이 여의사를 선호하는데다, 산부인과에 미래가 사라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남자 전문의가 급감하면서 야간 분만을 담당할 의사가 태부족이다. 여의사들은 육아 등의 부담으로 분만이나 야간 진료를 꺼린다. 어느 병원에선 남자 원장이 진료는 접고 일주일 내내 야간 당직만 전담한다. 우리도 일본처럼 동남아 등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수입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분만할 수 있는 산부인과도 줄었다. 분만이 가능한 의료기관은 2004년 1천311곳에서 2010년엔 808곳으로 떨어졌다. 산부인과가 없거나, 산부인과가 있더라도 분만실이 없는 지역은 전국 230개 시·군·구 가운데 48곳이나 된다. 경기지역은 과천시와 연천군, 인천은 강화군과 옹진군이 없다.
고위험의 산모를 돌볼 종합병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임신중독증, 태반 위치 이상, 쌍둥이 임신, 노령 임신 등 고위험 산모들이 갈곳이 없다. 제때 입원 치료와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응급수술을 해야할 상황이 잦고, 고난도 처치가 필요해 동네 산부인과에선 다루기 어려운 사례들이다.
무과실 의료사고도 30%보상 ‘불합리’
분만 포기 병원이 늘어난 데는 의료분쟁 탓도 크다. 통상적으로 출산 1만건당 1건 정도에서 뜻하지 않는 분만 사고가 난다. 양수가 산모 핏속으로 흘러들어가 폐색전증이 생기거나, 출산후 갑자기 자궁근육 무력증이 생겨 산후 출혈이 멈추지 않는 경우 등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억울한 심정의 유족들은 병원에 거친 항의를 한다. 분만의사들은 언제 터질지 모를 사고 때문에 긴장의 연속이고, 한번 의료분쟁을 겪으면 스트레스로 대개 분만실을 닫는다. 최근 의료분쟁조정법을 도입하면서, 무(無)과실 의료사고에 대해서 산부인과 병원에 보상금의 30%를 분담토록 한 것도 병원들이 문을 닫는 이유다. 열악한 환경에서 분만실을 운영해온 의사들은 폭발 직전이다.
365일 24시간 분만실을 운영하려면 최소 의사 2명(교대), 간호사 8명(3교대), 야간 원무직원, 조리요원 등의 인력이 필요하다. 신생아실도 운영해야 한다. 산부인과는 산모와 태아, 두 생명을 동시에 다룬다. 현행 자연분만 수가 로는 병원 운영이 여간 힘든게 아니다. 야간이나 공휴일 근무, 응급진료에 대한 보상도 없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지난해 1.24명으로 세계 꼴찌 수준이다. 저출산 문제는 국가 위기다. 더불어 산부인과의 몰락 또한 심각한 문제다. 전문의도 다시 돌아오게 하고, 분만 산부인과도 늘리는 출산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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