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이 필요없는 즐겁고 명화같은 작품 남기고파"
누굴까? ‘가면무도회’ 라는 작품명과 나란히 쓰여진 이름, 손선형(50)이다. 고개를 들어 다시 보니 예쁜 양옷을 입은 아이는 신이 나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고, 토끼옷을 입고 앉아있는 아이는 토끼 마냥 새침하게, 입이 쭉 나와 아이들한테 인기가 없는 오리옷을 입은 아이는 부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두 친구를 째려본다.
며칠 후 손 작가의 작업실인 두울도예공방(수원시 우만동)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많았던 작업 인생
대학 때부터 조소 공부를 한 손선형은 사실조각부터 추상조각, 철조까지 두루 경험을 쌓아오면서 꿈을 키웠다.
하지만 대학원을 마치고 작품활동을 반대했던 엄마 때문에 지난 1991년 손선형 첫 개인전을 열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작업을 해왔지만 아이를 출산하면서 모든 생활이 달라졌다. 홀로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했던 때와는 달리 떨어지지 않는 아이 때문에 자유롭지는 않았다.
“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뭔가를 할 수 있을꺼라는 꿈은 있었죠. 대학 때처럼 승승장구 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를 데리고 전시장을 돌아다니다보니 성취감보다 좌절이 먼저 왔어요.”
아이는 등에 업혀있고 그럴싸한 작업실조차도 없었던 손 작가는 방 2개 중 하나를 떡하니 차지하고 꿈을 펼쳤다. 화학제품으로 하는 폴리작업 때에는 이웃주민들에게 거하게 밥을 사고 복도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두 아이를 모두 유치원에 보냈을 무렵 두번째 개인전에 욕심이 생겼다. 생각 표현을 하기 좋은 재료로 흙을 선택했지만 15년만에 내린 결정인 탓에 부담스러웠다.
문득 그는 15년 세월을 표현하고 싶었다. 나를 태어나게 해준 부모님의 결혼사진부터 언니, 오빠, 아들, 조카까지 부조로 만들었다. 인생사를 담은 작품이라 그럴까? ‘작지만 소중한展’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어릴 적 작업이 기억이 되살아난 듯 아이들을 재워놓고 나와 새벽 시간에 온 열정을 작품에 쏟았다. 내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결과를 기대하기보다 작업을 하는 것에 기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흔 쯤에는 시댁 식구들이 “무슨 대단한 작업을 하느냐고 밖에 나가냐”며 싫은 소리가 들리고, 일적으로 스스로의 갈등이 극대화되면서 또 한번의 고비를 맞았다.
“가족들이 오히려 일반사람들보다 이해를 더 못해요. 주부가 일을 하면 가정에 소홀해질 수 밖에 없잖아요. 남편, 시댁은 물론 친정엄마까지 무지 반대하셨죠. 근데 작업의 대한 열망은 사라질줄 모르더라구요.”
15년 간의 공백, 두려움이 가득했던 두번째 개인전을 끝낸 손선형은 지쳤었다. 우연히 두 아들의 어릴적 앨범을 보면서 아이를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선택이다.
아이들의 표정에 하나하나 신중을 기했다. 완성작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표정이 리얼하게 나와 결과가 흡족스러웠다. 첫 작품 이후 종종 놀이동산을 찾아 어린이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어릴적 아들의 모습, 조카, 교회 유치부 친구들의 표정을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그의 작품은 모두 실사이즈와 동일하게 완성된다. 여섯살이면 실제 여섯살 키와 똑같게 말이다.
특히 손 작가의 아이들에게는 웃는, 우는, 찡그리는, 해맑은, 새침스러움 등 표정만 있을 뿐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 한명을 빼고는 모두 흰 옷을 입고 있어 눈에 띈다.
그는 “아이들은 걷든 뛰는 런닝 하나에 면팬티 하나만 입어도 예쁘잖아요. 저는 그 자체를 표현하고 싶었어요”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이에 푹 빠졌던 손 작가. 작품 구상 때문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생겼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뽑기에 열광했던 것. 어느날 중3짜리 둘째가 곰돌이 푸가 얼굴만 내놓고 동물옷을 입은 휴대폰줄을 들고 왔다. 손 작가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무작정 아이와 함께 500원짜리 동전을 3~4만원어치를 바꿔 마음에 드는 모양이 나올 때까지 뽑기를 했다. 그가 푹 빠졌던 뽑기의 결과물이 이번 ‘가면무도회’이기도 하다.
“한참을 뽑기를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제 주위에 꼬맹이들이 부러운 눈으로 저를 보고 있더라구요. 순간 창피해서 얼른 자리를 빠져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어요.”
■명화같은 작품 만들고 싶다
이런 열정 때문일까? 세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인 8점의 아이 작품들은 한마디로 대박을 쳤다. 관계자들의 잔치로 치뤄지는 일반 전시회와 달리 일주일동안 500여명의 일반 관객이 전시장을 찾아 손 작가가 멀미가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작품은 관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생각지도 않게 모두 새주인을 만났다.
하지만 손 작가의 작품을 본 작가들은 “작품이 바뀌었네?”, “요즘 대중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라는 말을 툭툭 던졌다. 그는 좋아서 시작한 작업이기에 그런 평가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사람들이 전시를 보면 고민을 해야 하잖아요. 나 하나쯤 설명이 필요없는 즐거운 작품을 만들고 싶었죠. 내 만족보다 작가들이 인정하는 작품을 해야 한다는데 배신감을 느껴 반발감이 생겼어요. 무엇보다 마음이 힘들어서 만든 작품들이기에 포기하지 않던거죠”
손 작가는 아직 보여주지 못한 작품이 많아 내년으로 계획하고 있는 전시회까지는 다양한 아이 시리즈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연령대는 점점 낮아져 마지막 작품을 내놓을 쯤이면 아마도 태아가 될 것라는 것이 손 작가의 설명이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색깔을 표현하고 있는 손 작가. 그에게도 ‘처음 의도대로 누구나 보면 좋고 갖고 싶다는 작품을 만들자’는 나름의 철학이 있다. 귀여운 아이 작품이 자신을 위로했듯 전문가의 시각이 아닌 일반인들의 눈에 편안하고 즐겁게 보일 수 있도록 말이다.
“저한테 유행도 따라야 하고 대중이 좋아해야 하는데 왜 이런 작품을 하냐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명화처럼 보고 보고 또 봐도 좋은, 한번 보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두고두고 봐도 기분 좋은 작품을 하고 싶어요”
장혜준기자 wshj222@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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