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공사가 4천억원이다. 여기에 1천329억원짜리 전망 타워를 얹어줬다. 수의계약으로 줬으니 덤도 이런 덤이 없다. 횡재 한 업체가 입 닦고 있을 리 만무다. 담당 공무원들을 캐나다 미국으로 보냈다. 6천만원짜리 호화여행이다. 공무원 딸도 데려다 취직시켰다. 엊그제 발표된 감사원의 용인 비리실태다. ‘경전철 비리의 용인시가 또…’로 시작하는 기사가 봇물을 이뤘다. 담당 공무원의 민낯이 TV화면에 그대로 공개됐다. 모자이크 처리의 배려도 없었다. ‘뻔뻔한 공무원’이란 설명도 따라붙었다. 이쯤 되면 대망신이다.
업체 돈으로 여행 가면 안 되는 거다. 취직 부탁도 공무원이 했으니 압력이다. 그다지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행위에 비해 과한 망신을 당했다는 점은 이상하지만…. 사실 이런 일은 처음 듣는 일도 화들짝 놀랄 일도 아니다. ‘시장님’의 해외여행 때면 심심찮게 목격되는 게 ‘목적을 알 수 없는’ 일행들이다. 취업난 시대에 자식 일자리 구걸하러 여기저기 줄을 대 보는 모습도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도 파장이 크다. 용인시라서다. ‘용인시’하면 ‘경전철‘이 떠오르고, ‘경전철’하면 ‘혈세 낭비’가 떠오른다. 미운털 박힌 용인시에 정확히 조준된 감사원의 칼이다.
그런데 영 개운치 않다. 감사원의 칼이 왠지 격에 맞지 않아 보인다. 왜 그럴까.
2006년 4월. 수지시민연대 앞으로 감사원의 회신 하나가 배달된다. 용인 경전철에 대해 이 단체가 청구한 감사결과 통보다. ‘수요예측은 적당했고, 투자법 위반도 아니고, 손실보전 계약은 정당하고, 소음진동 대책도 잘 돼 있다. 그러므로 경전철 사업은 문제가 없다’. 수지연대가 문제 삼은 모든 부분이 ‘문제없다’로 정리됐다. 찜찜해 하던 지역 여론도 확 돌아섰다. “감사원이 경전철 추진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냈다. 사업 추진이 탄력을 받게 됐다.” 최고 감찰기관의 결정은 그렇게 모든 지역 내 우려를 한순간에 잠재웠다.
경전철 감사 ‘문제 없다’더니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난 4월5일. 수원지검 안상돈 차장 검사가 경전철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수요예측이 과장됐고, 손실보전 계약도 위법했고, 소음진동 대책도 엉터리였다. 용인 경전철은 총체적 부실이다’. 6년 전 감사원 판단과 정 반대다. 관련자 10명을 기소한 검찰이 거짓말을 했을 이유는 발견되지 않는다. 결국 감사원의 판단이 엉터리였다는 얘기다. 6년 전이면 어떤 시긴가. 7천300억원의 혈세 낭비를 줄일 수 있는 마지막 시기였다. 2조5천억의 미래 손실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런 예민한 때 나온 감사원의 오판이었다.
이제 세상이 다 안다. 선출직 시장(구속)은 임기에 쫓겨 치적 쌓기에만 급급했다. 교통개발연구원은 시장의 입맛대로 수요를 턱없이 부풀렸다. 시의회는 사업을 감시해야 할 기본 책무를 팽개쳤다. 발표된 범죄 구성도를 보며 시민들이 치를 떨었다. 그런데 이 책임의 울타리 속에 쏙 빠져 있는 곳이 있다. 감사원이다. 모든 위법 덩어리 위에 결정적인 정당성을 부여한 게 감사원이다. ‘아무 문제 없다’는 판단으로 면죄부를 줬다. 이 면죄부에 올라탄 경전철의 부실투성이 고속 질주가 그때부터 시작했다.
소 잡는 칼로 닭만 쫓아다녀
이런 ‘불편한 진실’을 안고 있는 감사원이 6년 만에 용인시를 뒤졌다. 그래서 내놓은 작품이 ‘망신주기 감사’다. 겨우 이런 거 들추려고 10평짜리 상설 감사방에 진 친 건가. 연간 220일(타 기관 감사 포함)을 뒤져서 찾아낸 게 고작 해외 여행, 취직 청탁인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경전철에 관한 한 감사원은 수지 시민들보다도 못했다. 수지연대의 6년전 자료는 차라리 ‘예언서’다. 2012년 수원지검의 수사결과발표와 거짓말처럼 일치한다. 그 자료를 만들었던 정주성씨(현 수지연대 운영위원)의 실망과 아쉬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17일 취재에서 말했다. “감사원이 왜 그런 거 같으냐고요? 아마 바빠서들 그랬나? 나 원 참….” 원망을 넘어선 체념이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의 6년. 예산 규모 3위의 부촌(富村)이 부채규모 1위의 빈촌(貧村)으로 추락해 가던 그 기간. 감사원은 소 잡는 칼 휘두르며 닭만 쫓고 있었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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